리와 야외 달리기
나는 운동할 때 3세트가 제일 힘들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겨우 반 왔으니까. 그래서인지 한 3세트 정도 뛰다 보면, 이왕 야외에서 뛰는 김에 그냥 집까지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특히 야외 달리기는 상대에 비해 뒤처지는 게 확연하게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따라가려다 보니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않고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3세트의 야외 달리기는 내게 최악이다. 다만 그날의 3세트는 조금 달랐다. 잔뜩 피곤해진 얼굴로 뛰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새로 온 리도 바깥에서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 또한 첫날부터의 강행군에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기진맥진한 우리는 서로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나는 말했다. 조금 기다려 볼까요? 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들 우리보다 빨리 뛰던 사람들이라 먼저 출발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주위를 살피다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우리 좀 걸을래요?
첫 농땡이였다. 우리는 살짝 뛰는 척하다가 크로스핏장이 눈에서 멀어지자 천천히 걸었다. 리는 이탈리아 음식점이 보일 때까지만 천천히 걸어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숨을 고르고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색함을 못 견디는 나 같은 사람은 대화에 마가 뜨는 게 싫어서, 힘들어도 말이 술술 나오더라. 내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는 첫날인데 많이 힘들지 않아요?부터 시작해서 이전에는 어떤 운동을 했었는지, 이름은 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운동하지 않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을 서로 번갈아 물었다. 리는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직업에 감탄했다. 리는 ‘오, 살면서 제가 절대 만날 수 없을 거 같은 사람이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리도 그래요. 리도 신기해요’라고 맞장구쳤다. 리는 여러 운동을 조금씩 맛본 운동 유목민이었다. 리는 헬스도 해봤고 필라테스도 해봤다고 말했다. 리는 예전에 크로스핏도 잠시 했었다. ‘그때는 다들 설렁설렁하는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다 에너지가 넘치는 거 같아요!’ 나도 리의 말에 긍정하며 말했다. ‘그렇죠. 다들 열심히라 대충 하면 너무 눈에 튀니까.’ 이상 대충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리와 나는 이탈리아를 지나서 태국까지 걸었다. 나는 태국 음식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저기 되게 맛있는 집이래요.
어쩐지 뛸 때마다 사람들이 야외테이블에 많더라. 여기 지나가면 맛있는 냄새 때문에 배고파요.
저는 배보다는 술.
맞아. 맥주 딱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마시고 뛰고 싶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손님이 많은 태국 음식점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저 멀리 크로스핏장이 보였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뛰었다. 몰래한 일탈이 끝나고 우리는 마지막 세트까지 최선을 다해 운동했다. 그날의 3세트 야외 달리기는 리와 나의 비밀로 남았다. 나는 고작 4분 만에 리가 마음에 들어버렸다. 그래서 용기 내 번호를 물어볼까 했다가, 수영장 바깥까지 이어지던 잡담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생각하며 그만뒀다. 대신 리에게 헤어질 때 손을 흔들어 줬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리도, 나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떤 인연은 그 장소에서만 만나기 때문에 더욱 오래갈 수 있으니까. 너무 다가가지 않은 덕에 나는 그다음 날도 리와 함께 운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는 여전한 웃음으로 내게 인사했고, 나도 전날보다는 덜 어색한 모습으로 반가워했다. 누군가 놀라게 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는 도망칠 때나 필요하다. 다가갈 때는 이 정도의 온도, 이 정도의 속도가 바람직하다.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길 잘했어. 요즘은 리가 오면 어쩐지 3세트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리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