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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30. 2022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바벨 앞으로

정신에도 주기적으로 세신이 필요하다



 어떤 우울은 탄수화물로 완전히 해결된다. 하지만 원인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우울은 다르다. 이런 우울 앞에서 단당류와 탄수화물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임시는 임시에 불과하다. 그 잠시는 해결한 기분이 들더라도 깨끗하게 우울감을 도려낼 수 없기에, 그 자리에 반드시 우울의 찌꺼기가 남는다. 그리고 그 티끌 같은 찌꺼기는 쌓이고 쌓여서 쥐도 새도 모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부산물 덩어리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감정을 흘려보내는 수챗구멍을 틀어막는다. 그렇게 부정한 감정을 자의로 배출할 수 없게 되면 항상 갑갑하고 먹먹한, 어딘가 콱 막힌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물비린내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보았을 때 눈빛부터 축축하게 젖어있는 그런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어느 작가는 우울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 창작이란 어느 정도 자아도취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도 눈을 감고 자신에게 취해 선율만을 느끼며 기타를 치는 기타리스트처럼. 아이디어를 발산해야 하는 동안에는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별안간 정신의 피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이게 되면, 내 안의 기타리스트가 눈을 떠버린다. 눈을 떴더니 저기 건너편에 고척 스카이돔 경기장이 보이고, 그곳에 전석 매진된 아티스트가 한창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도 지나지 않는 길 건너편에서 혈혈단신으로 서 있다. 반대편에는 화려한 현수막과 애드벌룬, 누가 봐도 최고의 공연이 진행되는 중이다. 그런데 초대받지 못한 가수인 내가 오래전부터 공실이었던 임대 건물을 뒤로하고, 아무 관객 없이 홀로 형편없는 연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나는 두 손을 기타에서 놓은 채로 더 이상 아무 창작을 할 수가 없어진다. 이렇게 밀려든 우울감에 도저히 손 하나 까딱할 자신이 없어서, 사흘이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날이 바로 이런 마음이었다. 내 안의 기타리스트가 뜬 눈으로 울고 있던 그런 날. 예전이라면 적절한 당과 탄수화물, 케이크 한 조각으로 나를 달랬겠지만, 이제는 운동복을 입는다.


 부정한 잡념이 내 발목을 잡기 전에 우선 운동복부터 입었다. 바깥을 나서니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초저녁이다. 약간 이른 감이 있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일찌감치 크로스핏장으로 가서 몸풀기로 윗몸일으키기와 백 인스텐션을 각 100회씩 하며 몸을 데우고, 중앙의 칠판에 적힌 오늘의 운동을 확인했다. 오늘의 운동은 달리기 400m, 벤치 프레스 12회, 풀업 12회, 고블릿 스쿼트 20회 총 5라운드. 그 아래 ‘For time’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이건 주어진 와드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날은 정확한 자세로 빠르게 끝내고 각자의 기록을 칠판에 적는다. 시간 안에 운동해야 하는 날에는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없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달렸다가 가볍게 호흡만 고르고 다음 운동을 하러 바로 움직여야 한다. 맥박은 127까지 뛰고 땀이 비 오듯이 내린다. 이런 날이야말로 땀이 비 오듯 온다는 말이 단순히 관용어가 아니란 걸 몸소 느끼게 된다. 머리칼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치며 쳐지는 몸을 질질 끌듯이 기구 앞으로 간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아직 운동 중에 보람을 느낄 만큼 실력에 여유가 없다. 그저 몸이 괴로울 뿐이다. 그나마 마지막 라운드의 마지막 운동을 할 때쯤 되어야 ‘오늘도 어찌어찌해냈다.’ 같은 감상을 남긴다. 그리고 커다란 칠판에 나의 보잘것없는 기록을 깨알같이 적는다. 물론 기록까지 좋으면 더 좋겠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 어쩌면 운동하지 않았을 하루이지 않은가. 이런 날에는 기록이 형편없더라도 운동을 하러 나왔기 때문에 스스로 가산점을 준다. 모든 게 끝나면 크로스핏화를 신발장에 고이 넣어두고, 신고 온 운동화에 대충 발을 구겨 넣은 채로 한 시간 만에 세상 바깥으로 나선다. 사실 이 모든 운동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고생이다.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살갗에 차가운 저녁 공기가 맞닿는 순간, 우울함이 쌓인 묵은 때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딱 이 기분을 느끼고자 한 시간이 고통스러워했다. 이것은 달콤함과 포만감과는 결이 다른, 정신의 개운함이다. 그리고 이 시원함을 한 번이라도 맛본 이는 정기적으로 몸의 때를 벗기러 대중탕에 가는 사람처럼, 정신의 세신을 위해 매번 운동을 찾게 된다. 뜨끈한 탕 속에서 지루하게 몸을 불렸다가 때 타올로 묵은 때를 벗겨내는 가벼움과 시원함이 가끔은 정신에도 필요하니까. 부산의 저녁 공기야 항상 다를 것 없이 그대로인데 뭐 그리 특별한 게 있을까 싶겠지만, 마치 목욕탕에서 바로 나와 마시는 뚱뚱한 바나나 우유의 맛이 그냥 별 일없이 사 먹었을 때의 맛과 다른 것처럼, 정신을 세신 하고 나서 마시는 첫 공기도 그렇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맛이다. 그리하여 그 마음 그대로 집으로 가서 가볍게 땀을 씻어내면, 어느샌가 정신의 물비린내는 싹 씻겨나가 흔적조차 없어진다. 흔히 유명한 격언처럼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고 하지만, 한 번쯤은 그 사이에 고강도 운동을 겸해보는 건 어떨까? 정신의 피로를 싹 풀어버리고 고기 앞에서 단백질 섭취까지. 이 얼마나 완벽한 루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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