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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30. 2022

쇼와 스포츠

앞으로 제 운동의 역사는 좀 다릅니다



 지니는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9년 가까이 축구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보디빌딩으로 전향했다. 지니는 몸이 타고났다. 남들보다 근육 모양이 예쁘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는 머리 좋은 사람도 타고나듯 몸의 골격 또한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나 운동을 통해 원하는 몸을 다 가질 순 없다. 과거 막연히 운동해야겠다는 마음만 먹었던 나는, 그런 기운 빠지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더 운동하기 싫어질 거라며 징징댔다. 웬만해서는 운동 자극 겸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 줄 만도 한데, 그럴 때 지니는 단호했다. 어쩔 수 없잖아. 자기 몸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물론 운동하다 보면 몸이 바뀔 수도 있지만, 꼭 몸을 바꾸기 위해서 운동할 필요는 없지.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다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좀 더 무거운 무게를 들게 되자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몸도 조금씩 변화했다. 어깨가 넓어지고 하체는 탄탄해졌다. 왠지 몸이 조금 다부져가는 기분? 다 좋은데 전면을 보다 보니 볼록하게 솟은 승모근이 눈에 밟혔다. 이게 뽈록 튀어나오는 거 보기 안 좋은 거 아닌가? 나는 직각 어깨를 드러낸 연예인들 사진을 보여주며 지니에게 물었다.


 운동해서 다 좋은데 이 승모근, 이것만 없앨 수는 없어? 유튜브에 많이 나오는 승모근 스트레칭 같은 걸 하면 될까?


 지니는 내 어깨에 솟은 양 봉우리를 흘낏 보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이 영상처럼 승모근을 이완한다고 해서 승모근이 다시 내려갈 리 없잖아. 해부학적으로 말이 안 돼. 그 논리면 다리 스트레칭을 하면 종아리 근육이 내려간다는 말이잖아. (엥? 되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어!) 스트레칭하면 유연해질 순 있지만, 있던 근육이 사라지진 않아. 네가 말하는 직각 어깨들은 태어날 때부터 전면에서 봤을 때 남들보다 상부 승모근이 덜 발달한 사람인 거지.


 나는 승모근을 녹여준다는 운동으로 완벽한 일자 어깨를 만든 사람의 비포와 애프터 사진을 보여주면서 따졌다. 아니 이 사람도 됐잖아! 그는 화면 속 사진을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연히 이건 포징(Posing)이지. 비포는 어깨를 내렸고 애프터 사진은 어깨를 잔뜩 들고 찍었잖아. 보디빌딩 하듯이 포즈를 취하면 순간적으로는 다 그렇게 보일 수 있어.


 그는  말을 하면서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 나는  광경을 보자, 마치 미용사에게 ‘손님 이건 고데기예요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엉덩이와 다리’만 살이 빠지길 원했다. 2009년에는 그 시절 최고 아이돌이었던 소녀시대가 입고 나왔던 쫙 달라붙는 스키니진이 유행했다. 그것도 알록달록한 색상으로만. 그리고 어떤 소녀들은 유행하는 옷에 다리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살면서 딱 한 번, 연분홍 색상의 스키니진을 사겠다고 우긴 적이 있는데, 우리 엄마는 사주면서도 의심했다. 너, 이게 진짜 갖고 싶다고? 사실 사면서도 안 어울릴 걸 알았지만, 나는 다들 다 그렇게 입는 거라며 버럭 화만 내고 바지를 챙겼다. 그리고 사놓고 한동안 단 한 번을 안 입었다. 아마 자신도 미심쩍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언제 한번 소풍을 갈 때 문제의 바지를 입고 간 적이 있는데, 누가 그걸 입은 날 보고 핑크 돼지라고 놀려댔다. 실제로 내가 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별로 타격이 없었을 거 같은데, 나도 아침까지 그걸 입으면서 거울을 보고 옛날 소시지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낑낑대며 바지를 벗어던지고 바지가 어울리지 않는 내 다리를 저주했던 거 같다. 내 체형은 골반이 넓고 엉덩이가 크고 상체에 비해 하체가 발달한 체형이다. 상체가 골아서 뱃살 한 점 없었을 때조차도 신체 중에서 엉덩이가 가장 비대했다. 나는 그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 엉덩이와 하체를 수치스러워한 나머지, 여기만 사이즈를 줄일 수 있는 운동도 찾아봤었다. 그 당시에 유명한 여자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꾸준히 했더니 효과를 봤다는 말과 함께, 그 연예인의 다리 운동법이 유행했다. 다리 한쪽을 일자로 쭉 뻗은 상태에서 들었다가 내렸다가를 번갈아 가며 반복하는 동작이었다. 나도 몇 개월 동안 가족들과 TV를 보면서,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아침에 일어나서까지 그 동작을 반복했던 거 같다. 엄마는 부산스럽게 뭐 하는 짓이냐며 갖은 핍박을 해댔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허공의 다리는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유행이 지나고 스키니진이 엄마 바지로 불리면서 나의 헛발질은 자연스럽게 멈췄다. 유의미한 성과를 봐서 그런 게 아니라, 스키니진을 입은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였던 역사는 전부 몸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크로스핏을 하는 이유는 뭘까? 분명 처음에는 ‘운동을 시작한 목적’을 체크할 때,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체중감량’이라고 답했던 거 같다. 시작까지는 나의 여느 운동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하다 보니 몸의 변화보다 힘의 변화가 더 재밌어졌다. 아무리 승모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를지라도, 누군가 ‘승모근을 녹이고 벤치 프레스 무게를 덜 칠래?’라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그건 아니지!’라고 말할 만큼 말이다. 나는 지니가 보디빌딩에 대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보디빌딩은 일종의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생각해. 스포츠랑은 거리가 멀지. 올림픽 어느 종목도 약물을 허용하지는 않잖아?


 지니는 몸을 조각하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지니처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쇼에 오르고 싶을 수 있지만, 꼭 나까지 쇼에 오를 필요는 없다. 평생 내 신체 부위를 전시대에 놓고 비교하며 살았어도 앞으로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다음 날, 크로스핏장에서 관장님이 로우바 스쿼트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여성분들 애플힙 갖고 싶으시잖아요. 그럼 둔근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앞벅지가 발달하면 안 예쁘니까, 스쿼트 내려갈 때 최대한 엉덩이에 힘이 가도록.


 처음으로 관장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거 같다. 애플힙을 쇼에 세우기 위해 운동할 생각이 없으니까. 나는 귀를 닫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복압을 넣은 채로 바벨 앞으로 다가갔다. 앞벅지로 들든 엉덩이로 들든 내가 쇼를 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를 하고 있단 걸 잊지 말자. 겉보기에 같을지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벨 앞에 서느냐에 따라 나의 운동 역사가 새로 써질 거야. 앞으로도 내 몸은 쇼에 오를 생각이 없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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