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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30. 2022

내가 좋아하지 못했던 운동들 : 수영과 태권도

앞으로는 묵이의 마음으로



 초등학생 때 태권도 학원을 다녔다. 학교가 끝나면 하얀 도복으로 갈아입고 흰 띠를 매고서 부지런히 다녔다. 도장에 가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고등학생 오빠가 50분 동안 시범을 보여줬다. 양 주먹을 쥐고 준비 자세를 취하고 팔로 아래를 막았다가 정면을 향해 주먹을 지르고. 일련의 자세를 반복하면서 오빠는 자신을 보고 잘 따라 하라 말했다. 나는 말 그대로 잘 따라 했다. 2개월 동안 따라 하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관장님이 나와 같은 흰띠 아이들을 나오라고 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승급심사를 할 거야. 준비됐지?


 다른 애들은 우렁차게 ‘네!’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나만 당황해서 ‘네?’라고 물었다. 내 물음은 모두의 기합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태권도에 심사 같은 게 있는지 몰랐어!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긴장한 나는 손바닥에 맺힌 땀을 도복 위로 수차례 쓸어내리듯 닦아냈다. 내 이름이 불리자 나는 쭈뼛거리며 가운데로 나갔다. 그리고 눈알만 굴리면서 가만히 서있었다. 관장님은 내게 왜 시작을 안 하냐고 물었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외워야 하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 아무것도 못하고 기만 죽어 있다가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와 서연을 마주하자마자 바로 눈물을 삼키며 외쳤다. 엄마, 나는 따라 하라는 말이 외우란 소리인지 몰랐어! 시험 치는지도 몰랐다고!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놀란 서연은 내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이제라도 외우면 되지.


 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울음을 삼키고 또 삼키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흰 띠는 나 밖에 없어. 그럼 나 혼자 따야 하잖아. 다른 거 하면 안 돼? 서연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은 태권도 대신 수영을 등록해줬다. 하루아침에 도복에서 빨간 수영복과 노란 수모를 쓰게 되자 잠시 잠깐 설렜다가 진지해졌다. 이번 건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태권도보다는 잘했다. 나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배웠고 자유형으로 레일 끝까지 갈 수 있는 어린이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배영을 배우는 날이었다. 수영 강사님은 내게 몸을 뒤집고 수면 위에 누워보라 하셨다. 계속 수영장 바닥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별안간 천장을 봐야 한다니. 차가운 물 위에 몸을 얹자 평소와 다른 자세 때문인지 괜히 긴장이 돼서 온 몸이 굳는 기분이었다. 강사님은 한 손으로 내 허리를 받치면서 몸에 긴장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키판을 잡고 다리가 키판에 완전히 부딪히지 않을 만큼만 물장구치세요. 그럼 뜰 수 있어요. 하지만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몸이 경직되니까 급하게 가라앉았다. 수영장의 물이 자꾸만 코 안으로 들어왔다. 계속 물을 먹기만 하니까 내 등 아래 세상을 믿을 수 없어졌다. 떠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경직되는 거 같아요. 강사님은 내게 그럼 떠야 한다는 생각을 잊으라 말했다. 떠야 한다는 생각을 잊으라는 생각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 나는 물 위에 한 번도 뜨지 못했고 수영도 가지 않았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누워서는 뜨질 못한다.


 반대로 우리 집 묵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수영이다. 걔는 수영을 어푸어푸라고 부른다. 서연이 묵이에게 어푸어푸를 시킨 이유는 아무래도 뭐 하나 할 줄 아는 운동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겸사겸사 살도 빼면 좋고) 집 앞에도 수영 교실이 있었지만 장애인을 위한 수업이 없었다. 서연은 수소문을 한 끝에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거리인 장애인 수영 체육교실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자리가 꽉 찬 바람에 스무 살부터 기다려 스물한 살이 돼서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부산은 대도시라 가능한 일이었다. 타지에 비하면 이 정도의 불만은 배부른 어리광에 불과하니까. 아무튼 묵이는 수영 가는 주말마다 부지런히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조금 빠르게 아침을 챙기고 엄마 손을 잡고서 2년 6개월간 수영을 다녔다. 마지막 해 겨울에 천식이 오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는 자유형, 배형, 평형을 얼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한 번은 엄마를 따라 묵이와 수영장을 간 적이 있었다. 전면이 유리로 된 2층의 대기실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묵이가 수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묵이는 내가 못하는 배영을 하고 있었다. 묵이는 물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찰방찰방 물장구를 쳤다. 물이 정말 좋나 봐. 키판을 잡고 유유하게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이 조개를 손에 든 해달 같았다. 서연은 멍하니 묵이를 바라보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묵이 잘하재?

 그렇네. 엄마가 고생했다. 근데 묵이는 배영 할 때 안 무섭나?

 배영이 뭐가 무섭노.

 가라앉을까 봐 무섭다.

 니는 참 인생이 힘들게, 잘하는 걸 좋아하대. 태권도 다닐 때도 그랬고 수영 다닐 때도 그랬고.

 못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노. 엄마가 잘하라고 보낸 거 아니가.

 아닌데. 나는 니 저렇게 좋아하라고 보낸 거다.


 서연이 가리킨  끝의 묵이는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짓고 둥둥 떠있었. 세상 욕심 하나 없는 얼굴로.


  저아 얼굴을 봐라. 저래 행복해한다.


  유리창으로 비친 내 얼굴을 보다가 물 위에 동동 뜬 묵이의 얼굴을 보았다. 저 얼굴을 보니 배영을 할 때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어쩐지 뜰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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