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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Dec 27. 2020

"불가능한 용서?"

[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2] / 영화 "오두막"

자식을 죽인 범죄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천사같이 예쁜 어린 막내딸을 말이다. 그 잔혹한 범죄자를 진정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란 무엇이고 용서하게 되면 내 마음은 치유될 수 있을까?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죄책감은 또 어떤가?    

영화 <오두막>에서 주인공 맥은 용서를 권유받는다.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인데 누구한테 권유를 받느냐고? 바로 신이다. 신이 권유하면 용서가 가능할까? 내 마음속의 분노와 증오, 자책감, 그리고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깊은 슬픔이 과연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을까? 용서를 하면 평안이 찾아올까? 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가 평안을 누린다는 것을 스스로는 용납할 수 있을까? 무수한 질문들이 떠 오른다.  

    

딸을 잃고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맥은 한 통의 짧은 편지를 받는다. 우체국 소인도 찍혀있지 않은 그 편지에는 어느 숲 속 오두막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 오두막은 자신의 딸이 희생된 곳이었다. 고민하던 맥은 오두막을 찾는다. 그리고 그 숲에서 신을 만난다.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과 며칠을 보내는 동안 맥은 어렵사리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물론 그 ‘용서’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기까지 맥은 용서를 강하게 거부했다. 그 범죄자는 심판받아야 하며 지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뻔한 얘기 같지만 그건 사랑 때문이었다. 그저 신은 자신이 맥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반복해서 알려주고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후회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내용 중 하나는 ‘화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죽어가는 당사자뿐 아니라. 떠나보내는 가족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용서와 화해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영화에서도 신은 주인공에게 ‘아픔을 가시게 할 쉬운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만큼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은 용서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세상에 악은 있으며 상처 없는 삶은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내면의 고통은 인간을 통째로 삼키기도 한다. 미움과 증오는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킨다. 

현실로 돌아온 맥은 관계가 소원해진 10대의 큰 딸과 화해한다. 그리고 딸에게 말한다. ‘아빠와 같이 동생의 죽음을 털어내는 법을 배우자고, 헤쳐나갈 게 무엇이든 너 혼자 하게 두지 않겠다고, 같이 하겠다고...’ ‘같이 하겠다’는 말은 용서를 거부했던 맥에게 신이 건네었던 말이다. 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즉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또 믿음으로써 맥은 딸을 죽은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내레이션이다. “누구보다 많이 사랑하고 빨리 용서하세요. 용서를 구한다면 더 빠르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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