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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Jul 30. 2021

"뜻이 가파르되 문장이 순하니 아름답다"

소설 <남한산성>

"너의 소(疏)를 읽었다. 뜻이 가파르되 문장이 순하니 아름답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표현이다. 김훈의 표현이 '아름답다'. 상소를 읽고 있는 왕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임금인 인조가 신하들이 올린 상소를 읽고 한 얘기다. 한 마디로 상소의 내용은 과격하지만 표현은 부드럽게 했다는 거다. 상소라는 것이 일종의 직언일지언정 봉건시대 군신관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왕에게 예를 갖춰 표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뜻이 가파르다 하였으니 꽤 과격한 내용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더구나 당시 상황은 병자호란, 청나라의 침략으로 왕실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상태였으니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신하들의 상소가 저마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담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어떤가?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과격하고 거친 표현들.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히는 상황들과 사람들. 그러다 보니 점잖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하기도 한다. 더구나 점점 더 자극적이고 관심을 끌만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언론과 누구나 생산 가능한 인터넷 환경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는 일부 콘텐츠들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말하는 내용보다는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상대방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각각 55%와 38%를 차지한다는 메라비언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말하는 내용은 7%에 불과하다. 약간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 법칙에 따르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과격하고 부정적인 내용도 부드럽게 전달된다면 말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최소화할 수 있다.   

출처 : 매일경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했다고 한다.(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경험과 이성(사고)의 조화를 말하는 듯하다. 형식은 내용을 지배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기도 한다. 형식이 이성이라면 내용은 경험이 아닐까? "뜻이 가파르되 문장이 순하니 아름답다"는 것은 내용은 과격하되 형식은 부드럽다는 얘기다. 적의 군대가 코앞에 닥쳐 왕조와 백성의 운명이 당장 어찌 될지 모르는 마당에 저마다의 주장을 담은 신하들의 상소는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출처 : 터미테이터 3, 라이즈 오브 더 머신

때로는 분노해야 할 때도 있다. 나서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악에 동조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쪼록 순한 문장이 순하다는 이유로 과격한 문장들에 밀려 묻히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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