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질문에는 끝이 없다. 하나의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끝이 없다는 것은 곧 영원히 이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해답을 주려는 기록이 아니다. 확신을 전하는 문장도 없다. 다만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마음의 파편들을 질문이라는 그릇에 담아 붙잡아 둔 흔적에 가깝다. 사람은 대개 정답을 찾는 쪽을 택한다. 그게 더 쉽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답은 동시에 결핍을 만든다. 하나의 답이 정해지는 순간 나머지 가능성은 모두 오답으로 밀려난다. 더 설득력 있는 논리가 나오기 전까지 다른 길들은 모두 배제된다.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딘가 거슬려도, 그 바깥에 선 순간 이방인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그리고 그 억압은 결국 또 다른 결핍을 낳아버린다. 하지만 그 뒤의 길은 각자 다르다. 누구는 그저 견디며 순응하고, 누구는 되묻는다. 내가 정말 이것을 원했는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내가 가장 오래 붙잡아온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모든 글은 결국 그 말의 변주였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다짐만이 아닌 나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몸으로 겪어낸 태도이기도 하다. 흔들리고 지치면서도 다시 쓰고 묻고 끝까지 부딪혀 보려 했던 시간들. 그것이 진짜 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빠르게 달려가는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한 번쯤 열정적으로 살며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현재가 즐겁다면 그게 옳은 길이다. 그러나 달려온 끝에서 아무 이유 없이 허무해질 때, 모든 것을 얻었는데도 공허가 스며들 때, 멈출 방법을 몰라 두려워질 때가 있다. 나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향해 있다.
완벽은 늘 가까이에 있는 듯 보이지만, 막상 손을 뻗으면 저 멀리 달아나버리는 신기루와도 같다. 손에 쥐어도 금세 흩어져 버린다. 오늘의 완벽이 내일의 어설픔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 어설픔을 느끼는 것은 결국 성장했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완벽은 절대적일 수 없고 언제나 주관적이다. 기준은 늘 바뀐다. 우리가 고정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어설픈 존재로 남겠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길이 이어지고, 새로운 시작도 열린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불완전하고, 여전히 모자라며, 때로는 나조차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솔직한 얼굴일 것이다. 아무도 완전하지 않고, 누구도 모든 답을 알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곧 철학이며 끝이 없다는 것이 바로 삶의 진실한 모습이다.
철학은 삶을 관통한 언어일 때 가장 인간적이다.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하루의 틈마다 불현듯 찾아오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건네질 때 가장 깊어지기도 한다. 철학은 정답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유할 자격이 있음을 알려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말로써 정의하지 않았을 뿐, 존재하는 모든 이는 살아가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든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 물음, 답변.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철학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여기까지 글을 읽은 당신이 어떤 길 위에 있든, 세상의 기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든, 혹은 스스로의 존재가 초라하다고 느낄지라도 이미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시작을 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그 힘이 결국 당신을 살게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묻는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당신의 물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물음이 언젠가 또 다른 시작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