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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May 08. 2018

Exactly the same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지금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영재반 혹은 서울대반, 연고대반이라는 이름의 편법적인 반편성 수업이 비일비재했다. 성적순으로 학생들의 순위를 매겨 특정 수업 시간에는 다른 반으로 이동해서 수업을 듣는 골 때린 풍경이 연출되었는데 순위는 매달 리셋되어 다시 매겨졌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무척 불편한 광경이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나 안 좋은 학생이나 모두 한 반을 구성하고 있는 소중한 구성원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이 사회라는 큰 틀에서 생각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순위를 매겨서 우성인자와 열성인자를 구별하여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는 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교육의 현장은 과일 시장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KEIGO NOGUCHI 의 쇼핑몰


젓가락 두 짝이 똑같지요. 그러나 똑같은 건 젓가락 두 짝 만은 아니다. 딸기도 똑같고 참외도 똑같다. 이 글은 'A 그리고 b' 시리즈의 3부 내지는 부록 편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크고 예쁜 과일이 좋은 가격을 받던 시대에서 이제는 똑같은 크기의 예쁜 과일이 좋은 가격을 받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심지어 생협의 MD들 조차도 농부에게 같은 크기의 농산물들을 요구하고 있다. 딸기의 경우 일명 '줄 세우기'라고 부르는데 똑같은 딸기가 줄 맞춰서 나란히 있어야 소비자들이 좋아한다는 명분으로 농부들을 압박한다. 온라인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나 역시 소비자들이 한 박스 안에 일정한 크기의 과일이 담겨 있어야 좋아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난좌에 가지런히 포장된 딸기


최근 딸기 택배가 활발해지면서 배송 중 무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난좌 포장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난좌에 포장해서 담으려면 불가피하게 크기 선별을 해서 동일한 크기의 딸기만 담아서 포장을 할 수밖에 없다.


 노구치 씨의 딸기 (사진 : 노구치 씨의 페이스북)


24구 한상자에 24만 원을 받는다고 최근 화제가 되었던 노구치 씨의 딸기. 현지 선진 농업의 현장을 가다 뭐 이런 타이틀로 일본의 사례는 국내에 많이 소개된다. 농업에 있어서도 일본은 기술적으로 분명 선진국이고, 우리나라에 들여온 과일 품종 중에 일본 품종이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는 늘 우리의 본보기로 소개되곤 한다. 딸기 1구에 1만 원이다. 우리나라의 농업도 고품질 고가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인데.


난 사실 반대다. 우리의 농부들도 돈을 많이 벌어 생계 걱정 없이 농사를 짓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이런 방식은 농산품을 공산품화 시켜 농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된다.


최고의 가격에 거래되는 성추 참외 마이스터의 참외


자로 잰 듯 오와 열이 딱 맞게 박스 안에 포장되어있는 참외의 모습이다. 물론 기술력의 발전과 함께 농부의 땀과 노력으로 이룬 결실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이러한 선별기준이 과연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는 와 보기 좋다. 와 예쁘다고 반응할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조금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 심지어 무농약, 유기농 인증의 친환경 농산물에까지 갈수록 동일한 잣대가 매겨지고 있으니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과일은 크기순이 아니잖아요


다양한 크기의 딸기


큰 딸기 작은 딸기 구별없이 담는 무선별 포장 방식 (공씨아저씨네)


나는 모든 농산물을 혼합과로 판매하는 편이다. 딸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이렇게 다양한 크기의 딸기를 섞어서 포장했다가는 상품성이 없다고 내처지기 일쑤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크기가 큰 놈은 좋은 가격에 크기가 작은 녀석은 싼 가격으로 마트 매대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과연 딸기 본연의 맛과 향도 매대 위에 올려져 있는 가격표 순으로 순위가 매겨질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다양한 크기의 대추 방울 토마토


심지어 대추 방울토마토 조차도 크기로 등급을 나눠서 선별을 한다. 저 자그마한 녀석을 선별할게 어디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일정한 크기만 담겨 있는 것이 시장에서는 좋은 가격을 받는다.


2S~2L 사이의  감귤만 합법적 유통이 가능하다


2015년 9월 1일 자로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가 변경되어 크기 구분이 기존 11단계에서 5단계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상품과와 비상품과의 구분은 명확하며 비상품과 유통은 불법이다. 


감귤 역시 혼합과로 판매하고 있는 나지만 비상품과 크기의 감귤은 판매를 할 수가 없다.(불법이기에) 그래서 지금은 2S~2L 사이즈의 감귤을 선별 없이 혼합과로 판매하고 있다.


선별없이 혼합과로 판매한다. (공씨아저씨네)



다름을 인정하자


복숭아와 같이 큰 과수가 더 맛있는 과일이 있는가 하면 짭짤이 토마토와 같이 작은 과수가 더 맛있는 경우도 있다. 큰 게 더 맛있는 과일이라면 대과가 더 좋은 가격을 받는 것은 합리적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없다. 그러나 작은 게 더 맛있는 과일들 조차 적당한 크기여야 좋은 값을 받고, 아주 작은 것들은 우등생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납득할 수 없다.


짭짤이 토마토는 작은 녀석들이 맛이 좋기에 시장에서도 3호에서 5호 크기를 가장 선호한다. 가장 좋은 가격을 받는다는 의미다. 크기가 큰 1호와 2호와는 맛에서도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6호는 맛에서는 전혀 떨어지지 않지만(오히려 더 진한 맛이지만) 크기가 '너무'작다는 이유로 가격은 한 방에 훅간다. 그래서 나는 6호도 5호과 같은 가격에 판매한다. 


짭짤이 토마토는 4호와 5호가 시장에서 가장 좋은 가격을 받는다.


토마토 한 줄기에서 100개의 열매가 열린다고 가정하자. 3호 크기 100개가 열리는 것과 5호 크기 100개가 열리는 것. 농부의 입장에서는 어떤 게 이득일까? 무게로 환산했을 때 당연히 3호 크기 100개가 열리는 게 이득이다. 그러니까 농부들은 농산물의 크기를 키우는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등급 판정의 기준이 '맛'과 '향'이라고 한다면, 5호가 3호 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게 된다면 과일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투입하는 농사 방법도 바뀔 수 있을 거라 나는 생각한다. 농부도 시장에서 다른 농부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물인 과일들도 시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본부의 시장경제 논리 하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약에 등급을 매겨야 한다면 그 기준이 크기와 모양은 아니었으면 한다.


아울러 일정한 크기의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이 '기술'적인 부분으로 일부 가능할지도 모르나 왜 우리는 일정한 크기의 과일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나는 제기하고 싶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닌 이상 자연에서 자라는 과일들은 다양한 크기로 나오는 게 당연할 것인데 말이다.


다름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정착되지 못한 듯하다. 기준안에 들어가지 못한 크기의 과일들은 과연 언제까지 이 땅에서 루저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제 과일의 선별 기준은 '크기'와 '모양'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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