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캠핑은 우연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강가에서 텐트 치고 노는 걸 좋아하셨다. 나도 좋아했다. 강가에 있는 날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엄마도 편안해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때문인지 텐트생활이 불편해도 좋아한다. 여동생은 깔끔한 호텔만 다니는데, 그걸 보면 유년의 기억이란 것도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무렵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2005년 즈음이었다. 첫 텐트는 국산 브랜드에서 나온 사각형이었다. '캠핑'이라는 말도 몰랐던 것 같다. '텐트 칠래?'라고 말한 것 같다. 남편 친구네 두 집은 경기도에, 우리는 칠곡에 살았는데 아이들 나이가 비슷했다. 세 집은 텐트를 하나씩 들고 검색으로 찾아낸 강원도캠핑장에 모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그날 강원도는 호우주의보였다(날씨도 확인하지 않고 갔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하늘은 어둑어둑한 것이 재난영화에 나오는 날씨 같았다. 걱정이 많은 나는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과 잘 수 없다고 민박집을 알아보았는데 방이 없었다.
'아.. 이런 왕 짜증!'
한 성질 하던 때라 나는 크고 억센 목소리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런 데서는 못 잔다고... 진상이 분명했다. 캠핑장의 착한 청년들이 데크 3개를 들어 가지런히 모아주었다. 다시 생각하니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청년들,,, 미안해...'
나는 비가 오는데도 철수하지 않고 있는 캠퍼들이 미친 것 아니냐고 집에 안 가고 뭐 하냐고 속으로 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들은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자다가 일어나서 텐트에 고인 물을 밀어 올려서 바깥으로 쏟아내야 했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윙윙 불어대는 바람이 텐트를 날려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앞집 텐트는 길이가 5m도 넘어 보였다. 어떻게 한 건지 공룡처럼 길쭉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자태와 아우라도 남달랐다. 그게 텐트계의 명품 스노우피크 풀세트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그 집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하루종일 모닥불을 피우면서 계속 뭔가를 굽고 있었는데 이튿날 아침 호기심 많은 A엄마가 산책을 다녀오더니
"야.. 저 집은 아침부터 파인애플 굽는다... 왜 굽지??"
"으엥... 서울사람들은 파인애플도 구워 먹나 봐?"
세 가족은 모두 대구 촌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파인애플은 구우면 신맛도 사라지고 당도도 올라가서 캠퍼들에게 인기 있는 간식이었다.
세 가족의 아침은 더 궁색했다. 텐트만 덜렁 있고 비를 가릴 때가 없어서 밥을 먹기가 애매했다. 남자들이 어디 가서 시퍼런 천막천(아마도 바닥에 까는 깔개였을 거다)을 얻어와서 나뭇가지사이에 걸었다. 그리고 옆에 버려져 있던 커다란 전선통을 굴려와서 테이블 삼아 밥을 먹었다. 웃음만 나온다. 깔깔깔!
수도권에는 캠핑문화가 시작되고 있어서 사람들은 '타프'라는 걸 치고 캠핑을 하고 있었다. 타프는 커다란 천막 같은 건데 텐트를 덮어서 보호하고 비와 햇볕을 차단시켜 준다. 그 아래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가장자리에 화로대를 배치한다. 비오는 날 타프는 필수품이다.
신문물에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은 열심히 검색을 해서 장비를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사기도 하고 되팔기도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나도 사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등유를 넣는 옛날식 렌턴이었는데 25만 원이 넘었다. 불빛이 아주 영롱하다고 했다. 그걸 덥석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서 참았는데 가끔 생각난다.
아이들이 우리랑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경험은 캠핑이라고 해주면 뿌듯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부모랑 함께 한 좋은 경험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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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 연휴는 너무 길었다. 6일 내내 집에서 밥을 해먹고 뒹구는 건 현명하지 않은 일이다. 8월 말에 예약했는데 그 캠핑장에 빈자리가 딱 하나 있었다. 나만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짧게 1박을 했는데 늘 아쉬웠다. 치고 나서 바로 다음날 철수하는 건 시간과 노력이 아까운 일이었다. 이번에는 2박을 계획하고 먹을 것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소고기, 돼지등갈비, 목살, 떡볶이, 전복까지 챙겼다. 술도 종류별로 담아갔다. 버드와이저, 필스너, 불로 막걸리, 느린 막걸리...
캠핑 둘째 날 아침 딸아이와 달리기를 했다. 뛰다가 걷다가 말하다가... 그랬다. 산 중턱에 위치한 왕복 2차선 도로는 한적했고 길 옆 고추밭 아래로 강물이 찰찰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줄기는 느리게 흘렀고, 우리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딸아이는 러닝실력이 좋아서 같이 뛰면 잘 뛰어진다. 두어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더운물이 나오다니... 너무 좋다!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봤다. 나무도 봤다. 등산을 하지 않고 산속에 이렇게 오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캠핑은 게으르게 자연에 접속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고 강물소리까지 들었다.
점심에 다시 달리기를 하러 갔다. 할 일도 없고 몸이 가벼워서(산속에서 자면 숙취가 적다!) 뛰고 싶어졌다. 다시 3킬로를 뛰었다. 돌아와 강물에 들어갔다. 올여름 지독한 더운 덕분에 9월 말인데도 강물은 그리 차갑지 않았다. 몇 번 물살을 타고 놀다가 다시 더운물 샤워를 했다. 자리로 돌아와서 소리친다.
"맥주 줘, 버드와이져로!"
아이가 멋지다고 박수를 쳐준다.
뛰고 먹고 다시 달리고 나무 아래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슬기로운 연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