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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 Sep 01. 2023

신입사원이 왔다

나는 못난 선배였다.

4년 차. 아직도 막내다. 

이건 뭐 군대를 두 번 전역하고도 남았을 연차다.

이젠 딱히 불만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팀장님이 “막내를 받아주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반신반의. 내심 기대를 품게 되었다. 

‘어떤 후배가 오게 될까? 나는 엄청 고생했었으니, 진짜 최선을 다해서 알려줘야지.’


인사팀 면담 후, 팀장님이 썩 밝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니수야, 정규직은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대신, 계약직 뽑아준대. “



12월. 

졸업하자마자 들어온 19살(!!) S는 상고에서 1등이었다고 한다. 

고용 조건은 2년 계약직.


”니수 밑에 드디어 후배 한 명 들어와서 좋겠네? “

상무님이 내게 윙크를 보내신다(우웩).

“자 여기. 이제 니수 선배라고 해야겠구만. 일 잘하는 선배니 밑에서 잘 보고 배워~”

“안녕하세요, 선배님.” S가 꾸벅 인사를 한다.

(선배? 내가 대체 왜 네 선배냐고.. 넌 정규직도 아니잖아???)



시작부터 못마땅했다.

후배들과 잘 지내는 동기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후배 시뮬레이션”을 했던가. 

런데 2년 후면 없어질 계약직이라니… 해외업무 하는 팀에 영어 못하는 계약직이라니….

‘차라리 뽑질 말던가. 이건 혹 하나 더 붙인 셈 아닌가? 이게 말이 되는 결정인가?’ 불만 가득한 생각이 든다.


심호흡을 하며 나는 월급쟁이 프로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내 밑으로 들어온 사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좋든 싫든 나는 이제 이걸로도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냥 빠르게 알려줘서 빨리 사람 만들어야지’하고 결심을 해본다.



그런데 또 걱정이 고개를 든다.

고졸계약직이 이 업무를 혹여나 매우 수월하게 해내는 순간, 내가 그동안 머리를 싸매고 했던 모습이 바보마냥 치부될 수 있다는 사실이 걱정됐다. 당연히 ”콘크리트 바닥에서 당근을 일군 “나의 상황과, ”양지바른 곳에서 당근이 잘 자라고 있는 상황“에서 업무를 받아가는 건 시작부터 달랐다. 

하지만 이건 이 업무를 해본 사람만 알 턱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빠르게 업무를 할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 반.
그러나 혹시 잘하면 나는 뭐가 되는 거지? 하는 마음 반.
천성은 착하지만 욕심과 질투는 많은,
나의 날것의 모습이 이런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못나보였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으며 인수인계를 해본다.

“자, 우리가 이 업무를 하는 이유가 뭘까. 1번 블라블라 2번 쏼라쏼라. 전체 프로세스는 이렇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의 업무를 담당한다. 펑크를 내면 뒷부분은 진행이 안된다.”

S는 큰 눈은 껌뻑이며 내 말을 경청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기적으로 할 건 1),2),3)이고, 4),5)는 스팟성으로 해줘야 한다. 그럼 1)부터 보자.”

어쨌든 표면적으로라도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신입시절, 늘 여유 없던 우리 팀. 아무도 나를 챙겨줄 여유가 없던 그 상황에서 “왜 이걸 모르냐”라고 다그치던 팀장과는 다르고 싶었다. 적어도 내게 일을 배운 사람만큼한테서는 “니수님이 너무 잘 알려주셔서”라는 말이 나오게끔 하고 싶었다. 사수도 없던, 건 by 건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보던. 서글펐던 나의 상황을 우리 팀에 새로 오는 누군가는 더 이상 겪지 않았으면 했다.



늘 양가감정이 들었지만 개인적인 대화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들였다.

두 명만 남겨져 야근을 하던 어느 날. 햄버거를 먹으며 나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우리 회사는 정규직 전환이 안돼. 

넌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니까 기회가 있으면 다른 회사 정규직 자리를 꼭 노려봐.”

말수가 없는 그녀는 씩 웃으며 식사를 계속한다.



S가 입사한 지도 대강 3개월째. 슬슬 몇 가지 업무는 손을 대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왔다. 

최선을 다해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한 편, 마음속 한 구석의 쓸데없는 불편감은 여전했다.

“이제 잘하네~ 이건 보기에 복잡해도 했던 거랑 비슷하지? 

이제 저것만 좀 더 익숙해지면 대부분 다 혼자 할 수 있겠다.”

“네 감사해요…

선배님, 저희 잠깐 티타임 할까요?”

“그래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난데없는 멘트가 난입한다.

“저 사실 그날 면접 봤어요.”



며칠 전 S는 갑작스런 연차를 냈었다. 연락도 안 돼서 당황스러웠던 날.

“아? 그렇구나. 어떻게 됐어?”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망했다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든다.

“…붙었어요. 정규직으로. 

팀장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선배님께 얘기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 꼬리가 흐렸던 건지 내 눈과 귀가 흐려져서 잘 안 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뭘 한 거지. 아. 클났다. 개 망했다.

3개월 동안 인수인계 열라게 했는데. 아.



”잘 됐네~ 축하해! 그래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있다 팀장님한테 잠깐 시간 내달라고 말씀드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휴게실을 나선다. 


회사생활은 원래 이런 건가. 아. 다시 막내인가? 아.

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마지막 회식자리. 다들 아쉽지만 축하한다고 한 마디씩 건넨다.

막상 갈 때가 됐다 생각하니 싱숭생숭한 마음 반, 잘 됐으니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 반. 나의 앞으로가 걱정이 되면서도 앞선 걱정은 필요 없겠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마무리되어가는 분위기. 


S와 같은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복잡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태연한 모습으로 걷는다. 기분이 업되서 약간 상기된 표정인 그녀의 기분에 내 기분을 끼워 맞춰줘 본다.

두런두런 계속해서 말을 하던 S가 잠시 말을 멈춘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녀가 말을 꺼낸다


“선배님,
3개월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저 다시는 이런 선배 못 만날 것 같아요.”



…응?

정적 속. 어둠 속에서 발소리만 들린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민망했다. 스쳐 지나가는 나의 마음속 표정들이.

숨고 싶었다. 과거 속 좁은 나와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부끄러웠다.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들이…


갓 20살이 된 이 친구보다 9살이나 많은 나는 그렇게 바닥만, 앞만 보고 걸었다.



정류장. 버스가 온다.

그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든다.


“다음에 또 봬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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