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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Oct 29. 2022

나는 너와 함께 걷는 죽음이다

반년 동안 런던에 살다가 최근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뉴욕에 아파트를 구해서 들어갔고 남편은 달라스 창고에 보관해놓은 짐을 옮기려고 여러 이삿짐센터에 전화해 견적을 물어봤다.  곳은 950 원을 부르고 다른 곳은 750 원을 부르더라고 했다. 갑자기 심각하게 우울해졌다. 애초에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미국을 떠날  침대나 소파 같은  가구는 정리하고 최소한의 짐만 남겨놨었다. 근데  시시한 짐을 되찾는 것조차 그렇게  금액이 든다니그렇다고  버리고 새로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돈도 돈이지만 자원낭비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뉴욕에 영원히 정착할 것도 아니라 나중에 이사 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2년마다 쓸데없이 큰돈을 써버리면 돈은 언제 모으고 애는 언제 낳고 집은 언제 사고… 미래에 나갈 돈이 두려워 미국 생활을 여기서 끝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다.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목을 잡을 때 나는 시야를 조정하는 것으로 도망치곤 했다. 시야 조정은 내가 삶에 대처하는 아주 유용한 방식 중 하나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관점을 조절하는 시늉을 하다 보면 나를 지배하는 현실이 조금 느슨해지는 걸 느낀다. 입자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허공 속에서 진동하고 있는 에너지일 뿐이다. 천체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늙은 별의 잔해일 뿐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두려움은 그 시야 조정조차 망가트리곤 한다. 현실이 너무 벅차면 고장 난 카메라처럼 초점이 흐릿해진다. 입자고 별이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은 천하무적이다. 죽음이 무찌르지 못하는 두려움은 없다. 생명의 최대 두려움은 죽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려고 앉아서 죽음을 상상했다. 먼 미래에 늙어 죽을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내가 사라지는 기분을 실감 나게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어느 순간 두려워졌다. 처음으로 죽음의 서늘한 손아귀가 겁이 났다. 지금껏 죽음에 대해 해온 명상은 다 가짜였구나 느낄 정도로 무서웠다. 죽음과 친구가 되어보겠다고 나댄 내가 우스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돈에 대한 두려움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테이크 올 마 머니!라고 외치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조차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니 늘 그렇듯이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내 몸을 관통하는, 그러니까 눈을 감은 상태에서 느끼는 공간이 막 변하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심연의 지형이 막 변하는 기분인데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언어는 생각보다 정교하지 않다.


이게 5차원인 걸까 살짝 의심했지만 3차원의 존재인 나는 5차원은 경험한다고 해도 이걸 설명하기는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2차원의 존재에게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우리가 인지조차 불가한 미지의 존재이듯이..


눈을 떴을 때 어느새 돈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져 있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는 돈, 필요할 때 다 써버려야지.


“깨달음을 향한 길에서는 그 어떤 노력도 헛되지 않으며 실패조차 없다. 깨달음을 향한 아주 작은 노력조차 너를 크디큰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힌두교의 3대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내용이다.


명상 전 내 마음속의 불안이라는 탱탱볼이 조마조마하게 부풀어서 마음속 벽과 벽 사이에서 튕기고 있던 기분이라면, 명상을 하며 탱탱볼이 갑자기 무거워지며 천천히 바닥을 향해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집어 눌러도 기를 쓰고 수면으로 올라오던 탱탱한 탱탱볼이 물을 먹고 천천히 깊은 호수 바닥으로 침잠했다. 안정을 실시간으로 경험했다.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두려움은 바로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다. 얼마 전 한국에 머물면서 며칠간 절에서 명상수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하필이면 절에 머무는 수행자가 나뿐이라 오히려 수행하기에는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밤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밤에 잠깐 별을 보러 나갔는데 정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절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결국 못 참고 금방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데 긴 복도 끝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을 슬쩍 보고 몸이 얼어붙었다. 진정하자, 망막에 와서 부딪치는 광자가 없을 뿐이야, 겁낼 것은 없어라고 되뇌어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진땀이 났다.


낮에는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절이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도대체 과거의 어떤 경험이 나로 하여금 이다지도 어둠을 두렵게 한 걸까 곰곰이 고민해봤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모태 두려움인지 오히려 아주 어릴 때에도 어둠을 두려워했던 기억만 떠올랐다. 어릴 때는 어둠이 무서워서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자야 했다. 그 와중에 눈은 부셔서 할머니 팔을 이마에 올려놓고 잠에 들기 일쑤였다.


그날 절에서의 첫밤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정체모를 소음 때문에 뜬 눈으로 지새웠다. 뭔가를 내려놓는 것 같기도 하고 두드리는 거 같기도 한 소리는 밤새 멈추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옆방은 분명 비어있었다. 쥐나 곤충이겠거니 괜찮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봐도 온 몸에 털이 곤두섰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당도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제 이 두려움이 날 놓아주겠거니 하고.


다음날 스님한테 물어보니 옆 방에 전기 배선이 있는데 그 소리인 모양이라고 하셨다. 두려움은 무지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하셨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직시하고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구나 하고 잘 털어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에게 잡아먹힌다는 무서운 말씀도. 스타워즈의 현자 요다가 한 말이 생각났다.


“두려움은 어둠으로 가는 길이다.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고통이 되지.”

나는 어둠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았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았다. 그다음 날 밤에는 옆 방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어둠이 너무 무서울 때는 생각한다. 미지의 어둠이 불러오리라 믿는 최악의 상황과 그 여파를 가늠한다. 내 상상대로 무섭게 생긴 귀신이 정말 거기 서있는다면? 나는 귀신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심장마비로 죽는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음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다. 그렇다면 죽는 와중에 귀신 따위가 과연 문제일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더 용감해진 느낌이 들지만 어둠은 여전히 무섭다.


우리는 두려운 것들을 회피하고 어둠 속에 묻어두고 싶어 한다. 그리고 힐끔댄다. 어둠으로 묻는다고 사라지는 두려움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영원히 살 거라고 착각하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림자처럼 삶과 죽음은 함께 걷는다.


얼마 전 남편과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미래의 딸의 이름으로 오필리아는 어떻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좀 그렇지 않아?라고 대답했는데 왜라는 남편의 되물음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오필리아는 결국 죽는 캐릭터인데 이름으로 쓰기 너무 부정적이지 않냐고 말할뻔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명상을 하고 죽음을 이용해 글을 쓰면서 말이다.


글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더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에 짙게 뭍은 그을음을 쨍하도록 닦아내야겠다.

죽죽죽

음음음


우리는 삶은 그렇게도 찬양하면서 죽음은 멸시하고 터부시 한다. 겨울이나 밤은 좋아하면서 그 안에 깃든 죽음의 속성은 무시한다. 죽음을 미화시키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죽음을 옹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죽음은 나의 늙고 현명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내 곁에 다가오고 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나는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삶의 모든 어려움을 담대하게 바라본다. 죽음이 이기지 못할 적은 없다. 죽음은 나에게 디멘터의 모습을 한 패트로누스다.


이 시간도 언젠간 무한에 수렴하며

무로 돌아가겠지

조금만 견뎌내면

다시 바람으로 돌아간다

너무 슬픔이 너를 휘두르게 두지 마라

절망도 두려움도 너를 시험할 뿐

너를 해할 수 없다

내가 항상 함께라는 것을 믿으라

나는 너와 함께 걷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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