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삶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삶은 기본적으로 죽음을 향해가기에 비극이다. 매 순간 인간은 에너지를 소진하며 언젠가는 소멸한다. 우리들의 직장 생활은 그 무질서도를 증가시키는 속도, 가속도의 측면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에 몰입하면서, 심지어 재미있게 일을 하자는 이야기는 참 버겁다. 정년이 임박하여 흰머리가 지긋한 팀장님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말씀하실 것 같은 대사다. 기업에서 한평생을 바치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고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훌륭한 어른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 듯하다. 나는 이것이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금의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직장에 대한 시선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직장 생활 자체가 삶에서는 비극적인 요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기는 정말 어렵다. 내가 응시하고 있는 모니터 화면 속의 엑셀 파일이 내가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담고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회사에서 수행하는 과업들도 처음부터 온전히 나의 순수한 흥미와 의지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직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열심히, 잘 해내야만’ 하는 곳이 된다. 이렇게 일 자체가 즐거울 수는 없지만, 나는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는 있다고 믿는다.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가 직장을 대하는 시선은 대충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회사는 돈을 받는 곳일 뿐, 과몰입할 필요 없다.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직장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부질없기에 많은 시간과 감정을 투입할 필요 없다.
주어진 업무만 완벽히 수행하면 눈치 보지 않고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자리를 뜨면 된다.
전적으로 공감하며 취업규칙 상으로도 잘못된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하루 8시간가량 체류하는 직장을 지나치게 시니컬하고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직이나 퇴사와 같은 다른 선택지가 없고, 지금 이 회사를 어떻게든 잘 다녀야 한다면 그 시간이 보다 가치 있게 느껴질 수는 없는 걸까. 영혼 없는 눈동자로 회사를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순간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도파민을 뿜어내게 만들 수 있다면 삶이 더욱 윤택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직장 생활에는 실제로 비극적인 요소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일에 대해 시니컬한 생각을 갖고 임한다면 그 조직은 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어릴 적에는 학교에 가는 것이 참 좋았다. 매일 등교가 기다려지고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사실 학생 본연의 업무인 ‘공부’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일단 학교에 가면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고, 그들과 자유롭게 떠들거나 축구를 하고 노는 게 재밌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치고 쉬는 시간에 매점도 다니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끝나곤 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지만 매일 아침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다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수행하는 일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즉 회사도 '업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딱딱할 수밖에 없는 업무를 자꾸 열심히 하라고 강요만 해서는 안 된다. 회사의 공기에 초점을 맞추고, 일이 재미없다면 일을 하는 환경이라도 바꿔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좋은 동료에서 시작된다. 다만 그것은 실제로 충족되어 있거나 바꾸기도 어려운 조건이기에 차선책으로 분위기를 수정하는 데에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잡담’의 중요성
과거 우아한 형제들(배달의민족) 조직문화에 관련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대기업들과는 차별화된 업무 생태계를 갖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잡담’을 장려하는 문화였다. 그 배경은 잡담이 가져오는 환기 효과에 있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나 수수께끼를 오랜 시간 동안 혼자 고민할 때는 해결되지 않다가, 동료와 함께 지난 주말에 봤던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불현듯 해결책이 떠오르는 것이다. 업무에 관한 고민거리일 수도 있고 어려운 기획안의 실마리일 수도 있다. 대여섯 시간 동안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어도 떠오르지 않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의도치 않은 상황과 공간에서 튀어나와 고군분투하고 있던 매듭을 풀어주는 것이다.
잡담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뇌의 다른 영역을 활성화시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영역을 사용하게 한다. 어벤저스가 얼마나 재밌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동료와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 협업 베이스로 돌아가는 기업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커피 한 잔과 함께 수다를 떨다 보면 1~2시간은 훌쩍 지나있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 대화의 알맹이는 막상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스몰 톡은 서로 간 마음의 문을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까지 뜨거운 열풍을 몰고 왔던 MBTI도 대표적인 잡담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퇴근 이후 늦은 시간까지 술을 먹으면서까지 유대관계를 형성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과 시간 중에 어느 정도의 교감을 나누는 것은 소통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현대사회의 업무는 대부분 협업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특히 우주론과 같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의 연구조차도 그런 경우가 많다. 좋든 싫든 그 연구를 함께해야만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홀로 사고 실험을 하며 일반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전략기획, 마케팅, 세일즈, 경영지원 등의 유관부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것은 필수다. 이런 마당에 각자 내 일만 하고 가야지라는 마인드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부서 칸막이를 깨겠다고 억지로 저녁에 잔을 부딪히고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방을 가기보다는 잡담을 장려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