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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수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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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ul 16. 2022

내향형

차분함, 진지함, 신중함의 가치

사람들은 타인을 범주화하여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인싸’와 ‘아싸’라는 개념을 창조하여 사람들을 구분 짓기 시작했다. 그 둘은 구분하는 범용적인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외향적/내향적 인간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타인을 판단하려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가령 주변에 친구가 많거나, 여가 시간을 주로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쓰고, 말주변이 좋은 사람들을 인싸라 하는 것 같다. 반대로 집순이/집돌이처럼 혼자서 시간 보내는 편을 선호하거나, 모임 자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경청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싸라고 일컬어지는 듯하다.


대부분 스몰 톡을 위한 소재이고 농담이겠지만, 누군가의 성향을 몇 가지 단어로 쉽게 규정하는 일은 조금 성급해보인다. 내면에 숨겨진 사람의 본모습은 필터를 거치면서 외부로 표현이 되는데, 겉으로만 판단해버리면 그 필터로 인해 포착하지 못했던 모습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MBTI 열풍은 인간의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특징을 알파벳을 활용해 표현하고 심지어는 이마에 상시로 써붙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MBTI의 첫 글자 중 'E'는 외향성을 뜻하고 자기 외부에 집중하고 활동적이며 무언가를 밖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임을 나타낸다. 반대로 'I’는 내향성을 뜻하고 조용하고 신중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 활동에 집중하기를 선호하는 성향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더 학술적인 개념으로 살펴보면 'E'는 단순히 친구가 많거나, 말주변이 좋거나, 밖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I' 또한 소심하거나 말수가 적다는 등의 특성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에너지를 주로 흡수하는지, 배출을 하는 쪽인지의 차이로 해석하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MBTI를 떠나서 외향성과 내향성은 상대적인 경향성일 뿐이다. 이를 누군가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이해하려는 행위 자체가 많은 오류를 만들어낸다. 현실에서는 보이는 그 순간에 어떤 사람이 말을 많이 하고 있고 활동적으로 보이면 외향적인 사람으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내향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렇게 표면적 특성만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일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한다.




저연차 때 유난히 얼어있던 나는 ‘왜 이렇게 말이 없냐’ 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날씨가 좋은 가을 날 대하를 먹으러 단체로 나갔을 때였다. 새우 껍질을 열심히 벗기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던 나는 상무님으로부터 토크 비중이 너무 낮다는 핀잔을 그 날도 듣고야 말았다. 사실 대화의 8할은 이미 들었던 상무님의 이야기였고 2할은 새로운 무용담으로 구성되어 한 시간째 이어졌기에 시청자들도 슬슬 지쳐가던 중이었다. 말씀을 하시기에 바쁜 와중에도 한 편으로는 어린 직원의 신선한 이야기가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반면 하급자 입장에서는 상대의 말을 끊고 발언권을 가져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판을 깔아줘도 흥미로운 썰을 풀거나 재치있게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어렸을 때나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관되게 조용한 편이었다. 그저 지금 상황에 주어진 과업을 묵묵히 수행하려는 사람일 뿐, 튀지 않았고 튀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화자보다는 청자에 가까웠다. 시끌 벅적한 술자리가 있을 때면 나는 주로 벙어리가 되었다. 마치 그 술자리가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끌려온 사람처럼 착석해있지만 대부분의 자리에 빠짐없이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었다.

앉아있는 내내 나는 뇌와 입을 검열하곤 했다. 원체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흐름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더 강하게 심사했다. 이 얘기를 하면 재밌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이건 너무 진지한가. 자체 방송심의를 하다 보면 이미 편성된 시간은 지나가고 다른 채널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나는 신중하지만 재미없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던 나는 주로 주변 눈치를 보고 사람들을 깊게 관찰하곤 했다. 학창시절 사람들이 편하게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칠 때 어떤 부분은 반드시 누군가 불쾌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한 적이 많았다. 그에게는 분위기를 띄우려던 가벼운 농담이 누군가에게는 조그마한 상처가 될 수 있었다. 특히 그건 보여지는 사실에 입각했을 때 더욱 크게 다가온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어떤 사람의 생활, 모습, 성격 혹은 특징에 얽혀서 전개될 때이다.

다만 나의 이런 경향이 생긴 것은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사교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어떻게 느낄까,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항상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반응을 살피기에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빴던 경우가 있었다면 그 경험 때문에 타인에게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먼저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거나 분위기를 즐기고 관찰하게 된다. 이런 마당에서 말주변이 좋다는 사람들이 이들에게 "왜 이렇게 말이 없어?" , "혹시 자리가 별로 재미가 없어?" 이렇게 말을 뱉어버리고 마는 것은 자칫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들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늘 외향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분명 자신만의 차분해 보이는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된 외향적 이미지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하려고 억지로 노력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활동적이고 밝고 한 편으로는 쿨한 이미지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 또한 대표적인 오해가 될 것이다.






이 담론들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오해의 화살이 외향적인 사람들보다는 내향형 인간들을 향할 때이다.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선이나 의견에 민감한 소극적인 사람들은 타인이 내뱉은 말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사이에 어느덧 나는 노잼형 인간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소모적, 단편적, 자극적인 애드리브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는 조금만 진지하고 차분해지면 쉽게 노잼으로 치부돼버리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내향적인 사람들을 간혹 사회적이지 못하다고 잘못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 사회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저 사교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해도 상대가 기분 나쁘진 않을까,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를 거듭 고민하느라 말을 건넬 타이밍을 놓쳤을 수 있다. 혹은 자기 검열을 거듭하다가 그냥 묵혀버린 탓일 수도 있다. 그들은 최대한 배려하며 말하기에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거나 오해를 만드는 일이 적다.


따라서 잘 모르는 누군가가 표면적으로만 관찰하고 이야기한 내용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는 것들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오히려 그 신중함과 진지함이 갖고 있는 가치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 차분하고 진지한 방향으로 에너지가 집중된 사람들은 남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섬세한 포인트를 짚어내는데 엄청난 재능이 있을 수 있다. 말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기에 오히려 깊고 오래 지속되는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 특화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뢰로 이어지고 감정의 깊이와도 연결된다.


스스로가 내향적인 성향에 조금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면 그 성격의 강점을 날카롭게 다듬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의해 이리저리 깎여 둥글게 다듬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은 사라지고 어설프게 맞춰놓은 듯한 엉뚱한 모습만이 남을 것이다.


'내향'은 나의 시선이 주로 스스로의 내면을 향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을 진실되게 바라보고 객관화가 잘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외부와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산하는 존재들 틈에서 균형을 잡고 수렴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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