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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세종은 이름이 아닙니다.

『호기심이 생기는 역사』

by 박재한
세종학당재단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png (1) 세종대왕 동상

005. 세종은 이름이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한국의 어떤 왕을 칭할 때 고려 광종, 조선 성종, 영조, 정조, 숙종, 세조 등의 이름을 부르고는 합니다. 어렴풋이 이 명칭들이 이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렇게 부르는 것이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죠. 도대체 저 명칭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왕들은 실제 살아있을 때에는 어떻게 불렸을까요?


우리가 많이 들어본 저 명칭들은 묘호라고 합니다. 애초에 사당 묘자에 부를 호자를 써서 종묘(돌아가신 왕의 신주를 모아놓은 신성한 장소입니다.)에서 부르는 명칭이라는 뜻이기도 하죠.(묘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체적으로 조는 국가를 건국한 왕이나 중단된 나라의 정통을 다시 살린 왕에게 부여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종은 왕위를 정통적으로 잘 계승한 왕들에게 부여되었다고 하죠. 물론 위 내용은 모두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예기의 문장인 "공이 있는 자는 조가 되고, 덕이 있는 자는 종이 된다."의 문장을 따르고자 만든 규칙인 것 같습니다. (조와 종을 나누는 기준,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따라서 조선을 예로 들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기 때문에 태'조'라고 묘호가 만들어진 것이고, 태조 다음은 정통적으로 잘 계승을 했기 때문에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정이나 무언가의 큰 변고를 겪어 새로운 왕이 계승하게 된 경우에는 '조'가 붙게 되는데요. 인조반정을 통해 왕에 오른 인조, 홍경래의 난을 겪은 순조가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 물론 단종을 몰아낸 세조도 같은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넘어가게 되면서 '조'라는 단어의 강렬함에 의하여 규칙을 무너뜨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조'라는 묘호가 붙으면 왕이라고 하는 최고 권력에 등극하거나, 나라를 새로 건국한 수준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요. 광해군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 '선종'을 선조로 바꾸었습니다. 그 뒤로도 영종, 정종, 순종도 영조, 정조, 순조로 바꾼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묘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묘호,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 3월 10일 갑인 2번째 기사 (1450)

의정부 등 여러 관원이 의논하여 대행 대왕의 시호와 묘호를 지어 올리자 그대로 따르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육조(六曹)의 참판(參判)과 집현전 제학(集賢殿提學),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이상의 관원과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대행 대왕(大行大王)의 시호(諡號)를 영문 예무 인성 명효(英文睿武仁聖明孝)라 하고, 묘호(廟號)를 세종(世宗)이라고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의정부는 조선시대 최고 정책 심의 기구로 지금의 국무회의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육조는 이, 호, 예, 병, 형, 공조로 구분된 부처입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 국방부, 교육부 등의 부처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죠. 이 각 부처의 참판(종2품)이라고 불리는 고위 직책의 인사와 집현전(국가 연구원)의 제학(종2품), 춘추관(대통령 기록실과 같이 기록을 주관하는 부처)의 직원인 동지춘추관사(종2품) 이상의 관원들이 의논해서 세종이라는 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묘호를 만드는 일은 많은 고위 인력이 들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국가의 큰 정치적 행동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왕에게는 뭐라고 불렀을까요?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주상 전하라는 단어도 쓰고, 전하라는 단어도 쓰는 것이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주상, 전하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 7월 26일 기사 1번째 기사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잠저(潛邸)에 계실 때에 (중략)"


세종실록 1권, 세종 즉위년 8월 11일 무자 3번째 기사

"주상이 일찍이 이수에게 배웠으니, 지금 비록 직위가 낮다 하더라도 대언(代言) 벼슬을 줄 만하니, (중략)"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 3월 23일 갑오 1번째 기사

"전하께서 이미 효장 세자(孝章世子)의 계통을 이어받으셨으니, (중략)"


영조실록 1권, 영조 즉위년 9월 1일 신축 5번째 기사

"전하(殿下)께서 이미 성의(誠意)를 가지고 아랫사람을 대하시니, (중략)"


영조실록 75권, 영조 28년 1월 21일 계미 1번째 기사

"오직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아름다운 덕행을 지니고 일찍 운명하였음을 슬퍼하고, (중략)"


주상(主上)은 주인 주자에 위 상자가 붙은 한자 표현으로, 황제를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주상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이었기 때문에 조선 왕조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나, 관용적으로 고려 시기부터 주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조선에서도 관용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하(殿下)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많이 사용한다. 드라마나 조선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영화를 찍을 때에도 종종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서서."라는 문장을 익히 들어봤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은 표현입니다. 실제로 전하라는 표현을 조선에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실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도대체 전하는 무슨 의미일까? 전하의 전은 전각 전자로 왕이 업무를 보는 건물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왕의 업무를 보는 공간인 근정전을 뽑을 수 있겠다. 이 근정전 아래에서 신하가 왕에게 말씀을 드린다는 의미로서 전하가 사용되었다가 후에는 왕을 뜻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마지막으로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세종 이도, 영조 이금, 고종 이형 등은 살아계실 때도 부르지 못하였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살아계실 때에는 주상, 전하와 같은 표현으로 왕을 가리켰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묘호를 통해서 왕을 가리켰습니다.



[출처]

(1). 세종학당재단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 모든 조선왕조실록의 저작권은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에 있음을 강조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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