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만큼 '의미'가 극대화된 사물이 인생에 몇이나 있을까. '인생의 한번 일지도 모른다'는 캐치프라이즈는 결혼 준비를 하는 내내 나를 뒤흔들었다.
업체 목록도 가격 정보도 모두 블라인드였던 웨딩업계를 먼저 지났던 사람들의 약간의 후회와 그래도 만족했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절대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나가야지'로 시작했던 다짐은 준비 기간 내내 지치고 지쳐 결혼식은 꼭 해야 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들었다.
내가 상대를 사랑했고 남은 여생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결혼준비인데 시작과 함께 나를 맞이했던 건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웨딩홀, 혼주 한복 등등의 계약과 거기에 따라오는 크고 적은 금액들이었다. 수십 수백 개의 업체들을 보며 자본주의 세상임을 가장 여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웨딩밴드가 있었다.
나에게 반지란 서로에 대한 약속의 증표, 함께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적인 매개체였는데,
분명 그랬는데 내가 알아보고 있던 건 어느새 웨딩밴드 업체의 급수였다.
대부분은 명품으로 한다던데, 한 번이고 평생 착용할 텐데 비싸도 이 정도 금액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느니 디자이너브랜드로 차별성을 가지는 건 어떨까?
결국에는 결혼반지를 고르는 일이 운동화와 가방을 고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느 때나 그렇듯 모든(이라고 믿고 싶은) 가치를 고민해 봤다고 생각하고 나서야 탁! 하고 실이 끊어지듯 고민은 놓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결혼을 재정의했다.
나에게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매일의 연속이고, 식이든 반지든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들은 그저 찰나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론적으로 웨딩밴드로 처음 커플링을 했던 종로의 자그마한 가게에서 같은 디자인으로 금반지를 주문했다.
커플링이었던 엥게이지링(실버) 엥게이지링. 인게이지의 일본식 표현이 굳어진 반지의 모양으로 가장 기본의 반지를 뜻한다.
하지만 이름은 엥게이지링이다. 반지 자체가 '약속'을 담고 있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기로 약속하겠습니다. 나는 이 마음을 담아 우리의 웨딩 반지를 구매했다.
특히 이벤트가 담긴 물건을 구매할 때는 세상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높은 가치(명품, 브랜드)를 쫓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이 물건에 담고 싶은 마음이 뭔지 잃지 않는다면 가장 베이식한 반지의 형태여도 나만의 특별한 무엇이 되는 게 아닐까?
마치 전 세계 몇십 억이나 되는 인간 종 중에 한 인간을 골라 평생을 특별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