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CF 업무를 취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유무상 연계 강화의 필요성입니다. 광범위한 주제이고, 이해관계자도 많아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연관된 부분에 국한하여 간략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EDCF 통계보고서1)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업종별 누적 지원액(승인 및 집행)이 가장 큰 분야는 교통분야2)입니다. 도로 및 교통은 어느 국가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경제 인프라이기 때문에, 즉 그만큼 수원국(recipient country)3)의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통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수원국의 수요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이 강점을 지니는 분야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입니다. 이는 최근 발표된 ’2022-2024년 EDCF 중기운용방향‘(‘22. 1. 25, 기획재정부)4)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기획재정부는 ’개도국의 지속가능발전 도모 + 우리와의 경협 강화‘를 추진 전략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실행하기 위한 분야별 추진전략으로 ’그린·디지털 목표를 상향하여 그린·ICT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고, 도전적인 보건 목표로 개도국의 보건·의료 역량을 제고‘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러나 도로 등 단순한 교통 인프라 사업과는 달리, 그린·ICT 분야 및 보건·의료 부문은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합니다. 기존 EDCF 지원 사업들은 일단 건설만 하면 운영은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는 분야에 속하는데, EDCF가 새롭게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는 건설이 아니라 운영이 까다로운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병원을 짓는 것(건설기업의 영역)과 고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의사 및 간호사 등을 포함한 의료인력 또는 의료시스템의 영역)은 완전히 다른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즉, 이 분야들은 사업 실시기관의 사업수행역량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예컨대, 병원 건물을 매우 훌륭한데, 자격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충분히 모집할 수 없으면, 또는 의료수가 문제로 인하여 재정 자립성이 위협을 받는다면 사업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EDCF의 지원범위는 기본적으로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까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EDCF 재원을 활용하여 지어진 인프라의 운영은 전적으로 (아무래도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수원국 정부 및 사업 실시기관, 그리고 국내 무상(grant) ODA 기관와의 협업에 기대고 있습니다. ‘EDCF 경쟁력 강화 제고를 위한 대내외 파트너십 강화 방안’(‘22. 1. 25, 기획재정부)5) 또한 이를 잘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동 문서를 보면 완성도 높은 개발협력 콘텐츠 및 재원 간 복합금융을 위해 국내 무상 ODA 기관과의 협업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협력방식은 ’무상기관 전문성 활용, EDCF-무상기관 간 시너지 효과 창출 등이 가능한 협력방식을 사업 단계별로 유형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협력채널은 ’유·무상 연계사업 발굴·점검을 위해 범부처 사업심의회·분과회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기획 페이퍼 작성에 익숙한 분이라면 느낌이 바로 올 겁니다. ’사업 단계별로 유형화‘, ’범부처‘라는 단어와 같이 묵직한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보다 비판적인 눈으로 보면(혹은 사업 ’구조화‘ 관점에서 본다면), 기획 페이퍼의 실행(리스크)을 사업 단계별, 그리고 범부처로 분산시켜(사업 당사자들에게 골고루 분배하여) 유·무상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EoD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 부처 또는 기관만 책임을 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PF 사업 당사자들 중 한 곳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Single point of responsibility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특히 사업 운영 단계에서 무상 ODA 기관과의 협업방안은 ’운영·관리 :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통합 운영·관리 지원‘, 그리고 ’완공 후 지원 : EDCF 완공(예정) 사업에 대한 고도화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 다 운영권자(operator)가 되어 사업 운영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지원‘, 즉 컨설팅만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양자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유무상 협업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무상 연계가 매우 원활히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수원국 사업실시기관의 능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EDCF 업무를 PF 업무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EDCF 이야기를 좀 길게 한 이유는, 인프라 사업은 건설능력이 아니라 운영능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PF에서는 운영능력을 어떻게 확보할까요?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직전 강의에서 언급한 거래 관련 위험 중 특히 ’③ 원재료 조달 위험, ④ 사업운영 위험, 그리고 ⑤ 판매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가 됩니다. 이에 대한 단순한 대답은 원재료 조달 위험은 신용도가 높은 공급자와 장기 원재료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사업운영 위험은 유사 사업 경험이 풍부한 사업주가 프로젝트 회사 인력 및 운영 기술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6), 그리고 판매 위험은 신용도가 높은 offtaker와 offtake agreement7)를 체결하는 것으로 각각의 위험을 경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계약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여부입니다. 완공 테스트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고안된 결과물입니다.
1) www.edcfkorea.go.kr/HPHFFE093M01
2) 2021년 말 기준 누적 승인액 34%(1위), 집행액 32%(1위)로 압도적입니다. 2위는 수자원·위생 분야인데 승인액 및 집행액 각각 3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3) ODA를 제공해주는 국가를 공여국(donor country)이라고 합니다.
4) www.edcfkorea.go.kr/HPHFFE093M01/65335 별첨 1
5) www.edcfkorea.go.kr/HPHFFE093M01/65335 별첨 3
6) 혹은 아웃 소싱하는 방식으로
7) offtake agreement는 장기판매계약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전자는 가격과 물량 리스크 전체를 offtaker에게 전가시키는 계약이고, 장기판매계약은 물량 리스크만 전가시키는 계약입니다. 그러니까 전자는 (예컨대) 발전 프로젝트와 보다 연관성이 높으며(PPA는 offtake agreement의 특수한 형태입니다), 후자는 (예컨대) 시장판매가격이 적용되는 Oil & Gas 프로젝트와 보다 연관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