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 동화 도서관 구상을 위한 지식 탐방 에세이 첫번째 이야기
나는 2025년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입니다. 공공건축가의 역할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공공건축 프로젝트의 자문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흔합니다. 그리고 사업의 기획부터 건립까지 각 단계별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사업이 그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고 추진될 수 있도록 일종의 참견을 하는 '공공건축관리자'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2025년의 새해가 밝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한 공원의 공공도서관 건립을 위한 공공건축관리자 신청 안내를 받았습니다. 보통의 저라면, 사업계획을 꼼꼼이 살피고,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신청여부를 결정했을 터인데, 이 날은 뭐에 홀린 듯 '공원 속 공공도서관'인데, '목조건축'이라는 이 문구만 보고 바로 덜컥 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을 해도 보통은 경험여부 등을 살피고 선정하기 때문에 선정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그냥 해본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하게 신청한 것은 또 된다지요? 공공건축관리자로 선정되었다는 알림을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왜 나는 큰 고민없이 신청서부터 내고 보았을까요?
사실 나의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있던 건축적 소재들을 이 프로젝트가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책을 좋아합니다. 서점 가는 것을 즐겼고, 침대에 앉아 몇시간이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홀로 여행을 다닐 때에도 책, 혹은 OOO 킨들, 그리고 요새는 태블릿을 갖고 다닙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될 때까지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고등학교 1층에 있었던 도서관에는 '반지의 제왕'과 같은 소설책도 있어서 입시 준비를 위한 공부 전쟁 속에서 일종의 탈출구는 되었지만, 결국 마음의 조급함은 그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갔더니, 수십년 동안 출판된 여러 분야의 책을, 제가 찾을 수 있는 정보의 범위 내에서는 모두 찾아볼 수 있는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과에도 별도의 도서관이 있어, 건축관련 잡지와 논문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년이 올라가면서 역사 관련 과제를 하다보니, 도서관에는 일제강점기의 오래된 도시계획지도도 열람할 수 있었고, 복사나 스캔도 가능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정보를 책을 소유하여 수집하려고 했는데, 그렇지 않고도 지식의 문서를 읽고, 보유할 수 있는 방식이 도서관을 통해 넓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간혹 ㄱㅂ문고, ㅇㅍ문고 등을 주말에 한번씩 돌며 도서관 대신 활용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은 나의 지식을 넓혀주는 책과 자료가 모여있는 장소였습니다. 아직 나의 삶, 혹은 일상을 함께 하는 장소는 아니었고, 비일상적 탐구의 장소였습니다.
2006년 유학 장학금을 받게 되어, 미국으로 홀로 떠났습니다. 주변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들 한명쯤은 미국에 먼 친척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정말 '미국'이라는 나라는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장학생 캠프를 8월에 미국에서 한다고 하여, 아직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어, 서블렛을 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출신 박사생을 따라 프린스턴으로 함께 왔는데, 남편이 방학 중 연구로 인해 집을 비우게 되어, 단기간 룸메이트를 구하였는데, 제가 그 룸메이트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 주인은 평일에는 회사에서 근무하여 집에 없었는데, 처음 미국에 와서 캠프 이외에는 아무 계획도 없는 저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주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린스턴 공공도서관에 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 DVD도 빌릴 수 있다는 팁도 주었습니다. 여름 오후 땀을 흘리며 마을 중심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가 보았습니다. 실내에 들어선 순간 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공기, 빨간 카펫트가 쫙 깔린 로비, 바깥으로 탁 트인 유리창. 여태 겪어보지 못했던 도서관 내부 풍경이었습니다. 이렇게 공공도서관이 나의 일상 속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과 도서관도 라운지처럼 인테리어가 구성되어 있어, 폭신한 의자에 앉아 몇시간이고 건축잡지를 탐구할 수 있었고, 옆 건물 예술대학 도서관도 지식의 바다 속에 풍덩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도서관과의 만남은 내가 새로운 도시로 이사갈 때면 그 도시, 혹은 동네의 도서관을 가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삼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행을 다닐 때에도 도서관 구경을 하게끔 하였고, 자연히 도서관 건축에 대한 관심이 머리와 가슴에 박혀 있게 되었습니다.
2013년 서울로 돌아와 저를 잘 봐주신 대학 선배의 추천으로 서울시 정책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 중 한가지가 불광동 혁신파크를 새롭게 활용할 방안을 찾아나가도록 기록과 포럼을 기획하여 추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같이 연구에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의견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도서관이 여러 활동이 벌어지는 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럼에도 도서관 전문가와 도서관을 건립한 건축가 등을 초빙하여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잘한 경험들이 모이다 보니, 도서관을 직접 설계해보고 싶다는 욕망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라던지, 송도 도서관 건립 설계 공모 등에도 참여해 보았습니다. 아이디어의 개진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공모 참여를 통해 주기적으로 도서관의 기획, 계획, 운영 방식의 변화나 현황 등을 조사하여 학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으로 얻은 지식들은 '도서관 설계'를 진행하는 대학 교육에도 밑거름이 되기에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은 아니지만, 작은 책 코너들을 동주민센터나 초등학교 교실에 품어내는 시도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은 일상을 책과 함께 하고, 도서관에서 가질 수 있는 작은 여유와 휴식을 다양한 크기와 용도의 공간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5월 말인데 6월 말과 같은 더위가 벌써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매년 기온상승, 집중강우, 해수면상승, 기후위기와 같은 단어를 듣게 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축에서는 '지속가능성', '환경친화'와 같은 용어로 건축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태도가 이야기되었는데, 근래 '기후대응', '탄소저감'이라는 방향이 더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나도 건축설계를 하고, 건축설계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이슈에 대한 관심을 가진 지도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천한다는게 어렵습니다.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 방법도 있고, 말뿐인 방법도 있고, 좋은 방법이 있더라도 상황이 받쳐주지 않기도 합니다.
나는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이런 문제를 접근하려다 보니, 주로 '건축재료'라는 영역이 내가 시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범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이미 지어진 건물의 부분들을 최대한 잘 활용하여 자원의 사용과 자원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줄이자는 방향이나, 폐기물 등을 다시 사용하거나, 제조 과정에 재료로 활용하여 새로운 건축재료를 만들어내어, 새로운 자원의 사용을 줄이는 방향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탄소저장'이라는,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지 않고, 건축에 가둔다는 개념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재료로는 '목재'가 있습니다.
2024년 7월 열린 파리 올림픽에서는 일회성 올림픽으로 인해 야기되는 소비성 건축의 건설, 환경 오염, 과도한 지출 등의 올림픽 위기 비판론에 대응하여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도시와 건축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 자원을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폐기된 나무를 건축 자재로 재활용하는 등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에서도 탄소중립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였고, 상징물인 '그랜드 링'은 세계 최대 목조 건물로서 일본 현지 목재를 사용하여, 전통 일본 건축 방식인 '누키' 방식을 활용하여 목재 부재들을 끼워 맞춰 지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따라 건축 목재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요구와 건축 기술 변화 방향을 고려할 때에 목조를 알지 못하면 도태되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부쩍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말 제5차 광주폴리 큐레이터로 참여하여 축적한 폐자원 활용 건축재료 생산 기술을 확산할 수 있는 제안을 한 설계공모에 제출하였는데, 당선작을 보는 순간, 저는 '아차'라는 감탄사를 내뿜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설계공모 지침서를 보았을 때에 '목조'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은 진작에 하고 있었는데, 공사예산이 될까라는 너무 현실적인 감각으로 제안을 준비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목조건축'을 '도서관'에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니 얼마나 반갑고, 혹하는 소식이었을까요?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공모에 참여하는 건축설계사무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마감이나 가구의 상판 등의 향, 질감, 빛 등에 대한 묘사가 있어, 나무로 만들어진 공간이 내뿜을 수 있는 독특한 감각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나무로 잘 지어진 건축의 실내외는 따뜻하고 수려한 색상, 조직, 촉감으로 이루어져, 목재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늘 희망되는 재료입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적절한 목재를 구하기가 어렵고, 기상과 기후가 워낙 변화무쌍하여, 잘 쓰기 어려운 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무를 '도서관'에 적용한다면,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 도서관은 숲 속에 있습니다. 숲 속의 나무집. 누구나 꿈꾸게 되는 목가적 환상이기도 합니다. 막연하게 나무의 생애가 모두 한 장소를 지어낸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만듭니다.
사실 공공건축관리자를 신청할 당시에는 도서관 특화주제가 '동화'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다분히 서울의 끝자락에 위한 숲 속 공원 도서관이라면, 가족과 어린이의 최종 목적지는 되어야 할 것이라는 추측은 있었습니다.
공공건축관리자의 업무 범위를 확장하여 도서관의 건축기획도 함께 맡게 되어 관련 부서들과 회의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공원의 테마가 '동화'로 설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화'라는 주제 자체도 굉장히 매력있는 소재라고 생각해 오던 차였습니다. 해외에서는 안데르센 동화를 주제로 판타지 건축을 상상해내는 아이디어 공모도 있어 관심있게 봤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공간들을 건축적 스토리텔링으로 변화시켜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실제로 몇년 전 '도서관설계'를 건축설계 수업에서 진행할 당시, 한 학생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공간 전이를 공간 시나리오로 발전시키도 했습니다. 가끔은 소설 속 공간 묘사도 설계 구상에 굉장한 영감이 되기도 하는데, 동화 자체도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동화' 테마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캐릭터 혹은 수백년 동안 전해내려오는 서구 동화를 생각합니다. 이런 동화 도서관은 너무 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식과 편견을 벗어나, '우와' 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저의 새로운 지식 탐방에 있어, 신선한 주제와 관심을 안겨 줍니다. '동화'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이 '동화 속 같다'고 생각하는 공간의 요소와 성격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동화 작가들이 어린이의 심성을 자극하고 감동시키기 위해 심어놓은 동화 속 공간은 어떠한지도 샆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저의 아이와 질문과 대화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도서관 건축기획에는 최종적으로 건축의 구상과 그림이 담길 것이고, 이것이 표와 문서로 딱딱하게 기술될 것입니다. 그런데 기획 과정 중 책을 읽고, 장소들을 탐방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보고서에 담길 수 없는 말랑말랑한 날 것이기에, 그래서 건축 기획을 진행하며 생기는 소소한 탐방과 사색을 앞으로 글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참고문헌]
마싸이에 마사시 (2016).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채.
윤정원 (2024). 순환생산의 울림. 제5차 광주폴리 순환폴리: 사람과 장소. (재)광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