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행복이 있는 섬 '돈없이도'12
미술 수업 봉사를 갔다가 홍작가님한테 호박을 얻었다. 홍작가님은 단독주택에 살면서 소소하게 농사를 짓는다. 지난주에 주려고 했는데 호박이 아직 안 컸다고 일주일 동안 잘 키워서 주겠다고 했는데, 잊지 않고 가지고 온 거였다. 아침에 밭에서 따온 호박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주먹 두 개 크기의 호박의 반은 도톰하게 썰어서 멸치육수와 새우젓, 다진 양념을 넣고 찌개로, 나머지 반은 잘게 썰어 전을 부쳤다. 오늘 아침 메뉴는 단 두 가지, 호박 찌개와 호박전.
호박전의 가장자리 바삭한 부분을 초밥이 입에 넣어줬다.
“오, 다네.”
단호박과 접붙인 호박이라는 걸 나중에 들었다. 먹고 나서 내 몸에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뭉근하게 끓인 호박찌개를 밥이랑 비벼먹는 걸 좋아하는데, 간을 싱겁게 해서 밥보다 호박을 많이 넣고 섞으면 술술 잘 넘어간다. 제철에 나온 예쁜 호박을 내 식탁으로 데리고 오는 일상이 마음에 들었다.
단톡방에 호박찌개와 호박전 사진을 올렸더니 홍작가님이 갈치찌개에 호박을 넣어도 맛있다며 다음 주에 또 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해야 하는데, “하나만 주세요.”라고 했다. 갈치 맛이 베인 호박을 생각하니 사양할 수가 없었다.
호박 하나로 풍성한 식탁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건 큰 게 아니라 작은 것이어서, 이걸 위해 많은 걸 희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작은 안도감이 일었다.
10월 연휴에 구례 여행을 갔다. 도착한 날 마침 구례 5일장이 열려서 장부터 봤다.
“참게 얼마예요?”
“한 다라이 이만 원이여.”
“만 원 치만 주시면 안 될까요? 여행 왔거든요.”
“그려.”
하고 할머니는 참게를 담았다. 나는 껍질 깐 중하도 반만 달라고 했는데 옆에서 갈치를 손질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 사가야지. 남은 걸 어떡하라고!”
“그냥 줘, 여행 왔다잖여.”
할머니가 어르듯이 말했고, 나는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갈치 얼마예요?”
“세 마리 만원.”
“만 원 치 주세요.”
“옛다, 네 마리.”
할아버지가 시원스럽게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호박 주까?”
갈치찌개에 호박을 넣으려고 한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지? 나는 네! 소리치듯 대답했고 할머니가 트럭에 가서 호박 두 개를 가지고 왔다.
“큰 거하고 작은 거 중에 뭐주까?”
“호박전도 하려고 해서요. 큰 걸로 주세요.”
“그려. 부침개 하려면 큰 거 해야지.”
할머니는 무도 하나 줘서 나는 오천 원을 드렸지만 끝내 받지 않으셨다. 주머니에 넣어드리려고 했는데 허리를 뒤로 빼서 손이 닿지 않았다.
“돈 받으려고 했으면 주지도 않았제.”
할아버지가 말했고,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면서 여행 잘해요, 하고 손을 흔들었다.
2박 3일 여행기간 동안 문득문득 두 분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두 분은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을 것 같다. 손님들한테 주려고 일부러 밭에서 채소를 뽑아와서 달라고 하지도 않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주는 일을 무심하게 해왔을 것 같다. 돈이 오갔다면 스쳐 지나갔을 일이 자꾸만 생각났다.
“돈 받으려고 했으면 주지도 않았제.”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