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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24. 2022

가성비 0을 추구하는 사람

단단한 행복이 있는 섬 '돈없이도' 07

카페 앞에 주차하고 초밥이에게 텀블러 두 개를 내밀었다.


“그건 휘핑크림 못 올려.”

“뚜껑 안 닫으면 돼.”

“나한테까지 강요하지 마.”

무슨 내가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도 아니고 초밥이는 그렇게 소리치고 텀블러 한 개만 들고 총총 사라졌다.   

  

초코라떼를 쪽쪽 빨고 있는 초밥이에게 나는 200년 동안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한 번 쓰고 버리는 건 너무하지 않냐, 환경위험을 위험을 무릅쓰고 말했다.      


나는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양파망과 감자 박스를 들고 올 엄두가 나지 않아 몇 번 그냥 왔더니 양파, 감자가 똑 떨어져 버렸다. 온라인 구매는 여지없이 택배박스, 테이프를 낳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건 시간과 힘을 투자해야 가능한 건가,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내가 먹을 식재료를 사는 시간조차 손해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현실을 마주했다.


요즘 식당에 가면 종이컵,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인건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는 건 알지만, 모든 식당에서 일회용 컵과 식탁에 비닐을 쓰면 그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할까 싶다. 불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싶지 않는 나는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고, 없으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지인들과 카페에 갔을 때, 주인이 물어보지도 않고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줘서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텀블러가 없으니 먹고 가자며 자리를 잡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갈 때 매장에서 마시는 손님은 컵에 주셨으면 좋겠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일회용기를 원하지 않는 손님도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 필요하지 싶어서다. 

    

단골 세탁소 사장님에게 번거롭겠지만(?) 내 건 비닐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수박 망은 장바구니 안에 넣어놨다가 재사용한다. 분희 언니가 내가 수박 망을 꺼내는 걸 보고 야무지게 산다며 감탄했더랬다. 수산시장에 D팩(등산할 때 사용하는 아이스팩)과 밀폐용기를 들고 가서 생선을 담아온다. 쓰레기를 줄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비용과 수고도 덜었으면 해서 쇼핑백을 받아오지 않고 저층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버리는 비닐, 일회용기는 수도 없다. 야채를 담은 봉지나 빵 봉지를 보미 배변 봉투로 사용했는데 요즘은 변을 통에 담아와야 하나 생각 중이다. (밀폐) '용기'와 함께 냄새를 감수할 '용기'도 필요한 시점이다.     


<가나 순대>는 월명산을 돌고 혼자 가끔 들르는 식당인데 언제나 탁자가 반들반들 윤이 나고 식기가 깨끗해서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 혼밥이 편한 식당은 따로 있다. 테이블이 서너 개밖에 없으면 한 개를 혼자 차지하면 미안하니까 적어도 일곱 개 이상은 되어야 하고 장사가 너무 잘되는 곳은 안 된다. <가나 순대>는 테이블이 열두 개에다 식사 시간만 피하면 느긋하게 먹을 수 있어서 혼밥에 적격이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탁자

고나영 작가의 <무명이 조각 모음>은 라면, 과자 봉지 및 비닐을 잘라서 이은 작품이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색 비닐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편하게만 볼 수 없었다. 작품 속 서로 묶여있는 비닐처럼 우리도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요즘처럼 와닿을 때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효율성을 따지며 살아왔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적극적으로 가성비 0을 추구하는 설치미술가들을 보면 철없는 자식을 보는 엄마처럼 걱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세상에 진짜 중요한 일은 계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어느 한편에 누군가 버린 것들을 모아 작업하고 있을 사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 고르기 하는 기분이다.      


최재천 교수는 유퀴즈에서 코로나 19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박쥐가 지구 온난화로 온대지방에 넘어오게 되었고, 박쥐 몸에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었다고. 생태계 균형이 깨져 발생하는 제2, 제3의 코로나는 앞으로 계속 발생될 거라고 경고했다. 사람은 물론 동물, 자연, 지구가 이어져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포장 음식, 택배가 늘어나 쓰레기가 더 많아지는 상황은 얼마나 모순적인지.     

<무명이 조각 모음>  고나영 작가, 버려진 비닐로 작업


편의점 점주가 40대 아르바이트 직원을 5,900원짜리 족발을 폐기 시간 서너 시간 전에 먹었다고 고소한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 법원은 직원이 폐기 시간을 착각했을 수 있다며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5,900원 때문에 최소 6개월 걸리는 소송을 하면서 경찰, 검사 등 여러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쓰는 상황이 나는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나는 두 분의 요리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데 한 분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백종원 선생님, 한 분은 유튜브 <윤이련 50년 요리 비결>의 윤이련 선생님이다. 영상에 경상도 현실 모녀의 대화가 나오는데 나도 껴서 대꾸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윤이련 선생님이 무심하게 하는 말에 철학이 깃들어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땅 속에서 인자 나와가 주고 기운이 억수로 세다. 어리다고 다 연약한 줄 아나. 땅 속에서 차고 오르니라고 얼마나 용을 썼겠노. 그라이 기운이 충만한 거라. 봄에 끼 사람한테 영양가 높고 좋다 아이가.”


“어리도 기운이 센” 주인공은 머위순이다. "땅 속에서 차고" 올라온 머위순을 사서 무쳐 먹는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충만한 기운"을 먹을 수 있다. 그건 계산할 수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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