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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26. 2019

병원에서 본 '아들'과 '사위'의 차이

병실에 계시던 치매 할머니는 매일 주삿바늘을 뽑겠다고 소란을 피우셨고, 집에 보내달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오기가 나서 의사에게는 경찰이라고 하고, 간호사에게는 욕을 하셨다.

그러다 밥그릇도 던져버리고 밤이면 더 심해지셔서 병실에 계신 분들이 잠을 설치기 일수였다.

할머니의 간병인으로는 사위와 아들이 번갈아오셨다.


사위는 차분하고 인내심 있게 어르고 달래시며 간병하셨고 아들은 울그락불그락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면서, 화가 나면 병실 밖으로 잠깐씩 나갔다 들어오곤 했다.

치매 할머니께서 너무 심하게 난동을 부리실 때는 사위는 곤혹스러워하셨고, 아들은 같이 싸우고, 때리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다.


그런데 치매 할머니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사위가 밤에 잠을 잘 때는 그러지 않으셨는데, 아들이 옆에 간이침대에서 밤을 지새우자 계속해서 이불을 덮으라고 하셨다. 나중엔 간호사를 불러서 이불을 갖다 달라고 요청하셨다. 아들이 잠든 새 이불을 잘 덮었는지 잠을 잘 자는지 계속 신경 쓰시는 듯했다.


사위가 잠을 잘 때에는 이불을 챙긴 적이 없으셨다.

나에게는 살짝 사위 흉도 보셨다. 사위가 돈을 안 줘서 딸이 고생을 많이 했고, 안 해본 일이 없다며 사위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다.


보기엔 아들이 더 나빠보였다. 열 받으면 노모와 맞서 싸우고, 혼내고, 집에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사위 옆에서는 비교적 가만히 계시는 치매 할머니를 보면서 사위는 어려운 존재, 아들은 아까운 존재로 느껴졌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아들이 치매 할머니를 모시고 겨우 겨우 밥을 떠먹여 드리고, 수발을 들었다. 할머니는 그런 아들 앞에서 한사코 소변을 실수할까 봐 참으셨다. 결국엔 소변줄을 꽂는 상태까지 나아갔다.


할머니는 나에게 자꾸 손짓으로 부르셔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병원에 있으니 답답하다고 하시면서 아들이 말을 안 들어준다고 하셨다.

"할머니 힘드셔도 조금만 참으세요, 안 그러면 아드님이 힘들어요. 어서 기운 차리시고 밥도 잘 드시고, 아들이 가자고 할 때 가세요."


할머니는 애써 참으시며 '그래도 집에 가야 하는데...'라고 하셨다.

"내가 병원에서 이러고 있으면 울 아들이 힘드는데... 아들이 나이가 들힘들어요..." 하시면서 아이처럼 가만히 계셨다.


몸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도 오직 자식 걱정인 할머니를 보면서 '엄마'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치매 할머니의 말씀이 가끔씩 생각난다.

"우리 사위가 돈을 안 벌어줘서 우리 딸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오락가락 온전치 않는 정신에도 한가닥 줄을 붙잡고 계신 듯 정신이 잠깐씩 맑아질 때마다 딸 얘기를 하셨던 할머니를 보며 나의 친정부모님이 생각났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게도 중요한 숙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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