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기억은 의식을 만든 거울일까?

1부 : 시간과 자아를 잇는 흔적

by 우라노스


차가운 의자 위, 남자의 머리에 전극이 붙는다.

깜빡이는 불빛과 함께 기억이 하나씩 지워진다.


처음에는 다정한 웃음,

이어 함께 걷던 거리,

마지막으로는 이름마저 흔적 없이 사라져 간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조엘은 마지막 순간

“이 기억만은 지우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지만,

장면은 무너지고 빛 속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뒤에도

그는 다시 같은 길을 걷고,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같은 ‘나’일까



어릴 적 앨범을 펼치다 낯선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웃고 있는 그 아이 사진에는 분명 내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그 순간을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 속 웃음과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존재일까.

오히려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는 듯 낯설게 느껴졌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만약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 나는 누구로 남을까.




철학자 존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인격의 동일성은 기억의 연속성에 달려 있다.”


즉, 내가 지금의 ‘나’라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의 기억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하지만 문제는 기억이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뇌는 카메라처럼 모든 장면을 저장하지 않는다.

사건의 조각만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엮는다.

그 과정에서 왜곡과 누락은 피할 수 없다.

때로는 실제로 없었던 장면이 덧씌워지기도 한다.


나는 종종 친구들과 같은 일을 전혀 다르게 기억한다.

누군가는 비 오는 날이었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맑은 날이었다고 말한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기억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된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허위 기억’ 연구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도 반복적으로 암시되면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굳게 믿게 된다.



실제로 법정에서는 잘못된 기억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일도 있었다.


여기서 하나의 긴장이 드러난다.


로크는 기억의 연속성을 인격의 조건으로 보았지만, 현대 심리학은 그 기억 자체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질문은 피할 수 없다.

기억이 불안정하다면, 자아는 무엇 위에 서 있는가.


노벨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시냅스의 미세한 변화가 기억의 저장과 소멸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기억은 사실을 보관하는 금고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위해 계속 다시 쓰이는 이야기다.





망각의 선물



망각은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지혜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똑같이 기억한다면,
삶은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홍수가 될 것이다.


잊을 수 있기에 삶은 단순해지고,
우리는 ‘지금-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



다만 뇌는 모든 것을 같은 방식으로 지우지 않는다.

특히 생존과 강하게 연결된 고통과 위협의 기억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했던 순간은 희미해져도, 상처의 장면은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현재의 나를 흔든다.





의식의 거울, 기억




기억은 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그 거울은

언제나 균열과 왜곡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완전한 반영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사진 속 웃음은 잊었어도,

오래된 상처의 장면은

왜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나를 지배하는 걸까.


희미해지는 기억들 속에서,

고통만은 어째서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는 걸까.






<같이 질문해보기>
•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달랐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 잊고 싶은 기억과 잊히지 않는 기억 사이에서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 기억이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같은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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