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일상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카톡에 사진이 한 장 도착해있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사진만 달랑. 보낸 사람은 동생. 방 문을 열고 나가 사진에 대해 물어보니 어젯밤 함께 먹자는 유혹의 사진이었는데 반응이 없길래 혼자 먹었다는 거다. 맛있었냐고 물으니 그 라면의 이름은 어묵 라면이며 맛이 아주 끝내준다고 했다. 아침부터 라면 사진에 그 라면이 어묵 라면이라는 이야기까지 듣자 갑자기 모든 식욕이 라면으로 쏠렸다. 똑같은 걸 끓여줄 수 있냐고 물으니 동생은 선뜻 알았다고 했다. 나는 동생이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나름의 비법이 있냐고 물었고 동생은 내가 라면을 먹는 동안 맞은편에 앉아 자신만의 레시피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동생의 레시피는 이랬다.
재료 : 안성탕면 3/4, 꼬치 어묵 2개.
(면은 안성탕면, 어묵은 고래사 꼬치 어묵)
1. 550ml의 물을 팔팔 끓인 다음
스프 3/4을 넣는다.
2. 어묵을 넣고 2분 30초 끓인다.
(중간쯤 꼬치를 빼서 어묵을 펼친다)
3. 면 3/4을 넣고, 어묵으로 면을 덮는다.
(면을 절대 휘젓지 않는다)
4. 2분 30초 끓여준다.
(이때 파도 살짝 투척)
꼬들꼬들한 면을 최고의 상태에서 먹기 위한 그릇에 담는 시간과 테이블로 옮기는 시간까지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고 동생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레시피를 설명에 열을 올렸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던지 내가 라면을 다 먹은 후에도 설명은 끝이 나질 않았다. 나는 동생에게 최고의 칭찬을 날렸다. 동생은 요리는 못해도 라면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며 어깨를 우쭐해했고 기분이 어디까지 올라간 동생은 설거지를 마지막으로 완벽한 라면 서비스를 끝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의 라면 레시피에 무슨 큰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머리 한구석에서 어묵 라면이 계속 맴돌았다. [면은 3/4개. 면을 1/4개 남기는 거랑 1개를 다 넣는 거랑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노노~ ] 어묵이 들어가니까 양은 딱 이 게 맞는다고 고개를 흔들며 면은 3/4개라고 강조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스프도 3/4개 (조금 남기는 게 포인트라나) 그리고 면은 절대 휘저으면 안 된다고... 결국 나는 라면과 어묵을 꺼냈고 냄비에 물 550ml를 담아 동생의 설명대로 라면 끓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면을 나누고 스프를 남겨두고 하다 보니 스프를 넣기 전에 어묵을 먼저 넣어버렸다. 아차 싶어 다시 어묵을 건져내고 스프를 넣고, 그 사이 접시를 가져오고 사진을 찍고 이러고저러고 하다 보니 2분 30초 시간 맞추는 것도 깜빡했다. 시간은 흐르고 3분인지 4분인지 알 수도 없고.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어묵 라면은 완성되었다.
맛은?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이 끓여준 어제의 그 맛은 아니었다. 상상 속에서의 그 맛도.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다른 사람이 끓여주는 라면이라더니 그 말이 진리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집에는 1/4개 남은 안성탕면이 3봉지 남았다. (라면스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