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해지리 Dec 13. 2022

오지랖이라 여길 뻔한 그녀의 찐 조언

덕분에 끈적하게 삽니다



고작 생후 2~3개월의 아기들이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자고, 어른의 관심을 얻으려 졸라대지도 않고 ‘안 돼!’라는 과격한 금지의 말에도 좌절하지 않는 프랑스 아이들을 길러낸 저력은 무엇인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프랑스 아이처럼(2013, 북하이브) 출판사 소개 중에서 -







프랑스 아이처럼 (부제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목차 >


chapter 03. 밤새 잘 자는 아기들 (생후 4개월이면 모든 아기는 깨지 않고 12시간을 내리 잔다)

chapter 04. 기다려! (조르거나 보챈다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다)

chapter 08. 완벽한 엄마는 없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chapter 09. 똥 덩어리 (극단적 자유와 독재적 제한이 공존하는 프랑스의 습관 교육)

chapter 14. 네 길을 가라 (4세부터 부모에게서 떨어져 여행 가는 아이들)



(이미지출처:예스24)







둘째 임신 중이던 그해 난 프랑스 육아에 빠져들었다.

생후 4개월이면 12시간 내리 잔다는 마법 같은 그들의 육아법이 절실했다.

책 대로만 키우면 4살부터 아이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솔깃했다. 곧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한민국 워킹맘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그 보라보라한 '프랑스 아이처럼'을 부적처럼 교무실 책상에 올려두고 업무를 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그다지 친분이 없었던 선배 교사가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프랑스 육아 해보게요? 그런데 나중에 아이랑 어떤 사이가 되고 싶어요?"


모래?!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아마 난 꾀나 뚱한 표정이었던 거 같다. 님 좀 오지랖인 듯

3살이 되었지만 수면 분리는커녕 엄마껌 딱지로 자라고 있는 큰 아이를 자립적인 아이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읽고 있는 책인데  아이와 내 사이를 묻는 건지 시비거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니~ 아이를 나중에 엄마가 집에서 끼고 공부시키면 잘 따라왔으면 좋겠어요? 아님 자기 방에서 혼자 공부하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내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질문을 이어갔다.

 

당시 선배 교사는 초등학생 자녀 둘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을 퇴근 후 엄마가 관리하고 있다는 상황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엄마표 교육을 한 셈이다. 하지만 난 큰 아이가 3살이던 때라 퇴근 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하루가 끝나던 시절이다. 아이 교육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라서 그녀의 질문은 여전히 뜬구름 같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혼자 캠프 다니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아님 엄마랑 여행 다니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포기를 모르는 그녀.

이쯤 되면 뭘 바라고 이러나 숨겨진 목적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들먹이니 그제사 질문에 몰입이 되었다.

난 아이와 사춘기가 돼도 같이 여행 다니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둘이서만 유럽여행을 가보는 게 내 버리스트 중 하나. (벌써 내 꿈이 실현 여부는 2-3년 안에 윤곽을 드러낼 정도로 시간이 흘러있다.) 











"아이랑 돈독하게 지내고 싶어요. 여행도 같이 다니고, 기왕이면 공부도 집에서 시키면 좋겠어요"

드디어 내가 대답을 했다.


"그럼 쌤~ 프랑스 육아는 아니지 ! 우리나라 정서에는 프랑스 육아는 안 맞아요. 보통의 우리네 엄마들은 아이가 성장한 후에도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데 프랑스 식으로 키우면 안돼요. 젖먹이 따로 자기 방에 재워서 독립적으로 자라게 해 놓고 자식과 끈끈한 무언가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평소 성향을 보니깐 쌤은 프랑스 육아랑 안 맞아요. 그냥 키워. 우리 엄마들처럼. "


그녀는 속사포 조언을 던지고 유쾌하게 웃으면 퇴장했다.

그리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곱씹어 생각해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

당장에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바라는 끈적한 가족애와 프랑스 육아는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책을 조용히 치웠다.








지금 와 생각하면 내가 초등 남매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좁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집공부를 할 수 있는 시작점을 그녀가 만들어준 것 같다.

그때 멀뚱멀뚱 어색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사 말한다.

용기 내어 제 찐 조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랑스 육아를 마음에서 지우고 우리 엄마가 내게 했듯 아이가 품에 파고들면 마냥 받아주며 키웠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끈적한 가족애를 갖게 되었다. 이미 사춘기라 해도 무리가 없을 11살 아들은 여전히 엄마가 퇴근하면 현관까지 뛰어나와 품에 안긴다. 여전히 자기 방에서 자지 못하고 엄마 옆에서 온기를 채우고 가겠다고 안방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잠드는 일이 반복된다. 덕분에 통잠을 자고 싶다는 소원을 간직한 채 매일 남매의 발길질에 채이고 있다. 아마도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지불한 것이 내 통잠이었나보다.


 그녀의 오지랖 덕분에 우리는 오늘 끈적하게 옹기종기 모여 책을 읽고 집공부를 한다.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절대 마마보이, 마마걸키우는 건 아닙니다.

우리 집 남매는 누구보다 주관이 뚜렷한 어린이들입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함께 해온 시간이 쌓여 끈적한 가족애가 만들어졌고 덕분에 같이 책 읽고 집공부하는 시간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함께 해서 행복한 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살이 아직도 엄마랑 잡니다.

노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

7살 무렵 자기 방이 생기면서 혼자 자기는 합니다. 그런데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라서 여름에는 에어컨 없으면 도통 잠을 못 잡니다. 그래서 여름엔 더위를 핑계로 한시적으로 같이 잡니다. 다시 가을이 되면 제 방으로 갔다가 겨울에는 춥다고 안방을 찾습니다. 아이 방이 해가 전혀 들지 않는 북향에 확장을 해서 춥습니다. 다시 겨울이 지나 봄에 자기 방에 갔다가 여름에 돌아오는 순환 구조입니다. 봄 가을이라 할지라도 엄마 옆에서 온기를 느끼고 가겠다고 누웠다가 잠들어버리면 또 그대로 뒤엉켜 잠들기도 합니다. 곧 사춘기가 오면 같이 자자고 통사정을 해도 곁을 주지 않을 텐데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서 슬며시 곁을 내어주게 되네요. 많이 질척거린다는 걸 알지만 아직은 더 질척거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제 육아의 목표는 20살에 아이를 독립시키는 거랍니다.

어차피 밀어내지 않아도 사춘기가 되면 알아서 멀어져갈텐데 아직은 끈적임을 누리고 싶습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전 01화 맹자를 뛰어넘겠다는 무모한 출사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