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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Sep 17. 2021

나쁜 개는 없다

비정기적 우편함


그 개 이름은 알베르토였다.


시골 똥개한테는 과분한 이름인가. 삐뚤빼뚤하게 적힌 이름 팻말이 있는 개집을 지날 때마다 킬킬거리곤 하던 동네 아이들의 목소리가 떠돌았다. 원래 풍성했던 털은 큰엄마가 재채기가 난다는 이유로 바짝 깎인 못난 몸이 되었다. 순식간에 단모종이 된 알베르토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그 홀딱 벗겨진 개를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속도 없지. 알베르토는 그 앞에서 유일하게 풍성한 꼬리를 뒤흔들었다.      



리트리버랑 뭐가 섞인 종이라나. 어디서 주워왔는지.      


큰엄마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알베르토의 눈은 너무나도 천진하게 빛나고 있었는데도. 나는 알베르토가 귀가 처진 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베르토는 금방 컸다. 뭘 잘도 먹었다. 먹다 남은 뼈를 던져주면 앞발에 야무지게 가두고는 까득까득 잘도 씹어먹었다. 식사가 사료가 됐든 먹던 것을 죄 섞어 던져주든 가리는 법이 없었다. 알베르토는 그저 구석이 찌그러진 프라이팬에 담긴 자신의 몫의 음식을 씩씩하게도 먹었다. 프라이팬에 머리를 처박고 먹다가도 인기척이 들리면 어김없이 고개를 들고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끊임없이 꼬리로 바닥을 치는 소리가 탁. 탁. 비좁게 들렸다.      



골목에 들어오는 차 소리가 들리면 알베르토는 어김없이 흙바닥을 긁었다. 희한하게 꼭 이 집안사람들만 오면 저렇게 지랄발광을 해싸. 큰집 할머니가 뒤뚱하게 내뱉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반기는 꼬리에 바람이 세차게 분다.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 마당에 알베르토 혼자 부쩍 큰 얼굴로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개가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누가 예뻐해 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알아서 컸어. 나는 알베르토의 촉촉한 코를 토옥 톡 건드리며 말을 걸다가는 이내 그만두었다.


엄마아. 우리도 개 키우면 안 돼?

우리 집은 마당이 없어서 안돼.


정말로 개가 키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집에서 천덕꾸러기처럼 보이는 이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면 안 되겠냐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지. 엄마는 딱 잘라 안된다고 말했고 나는 더 조르지 않았다.      


잡아먹는 개 아니지?

먹긴 뭘 먹어. 그냥 집이나 지키라고 주워왔어.      


낮잠을 자는 내 위로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지나갔다.


알베르토는 곧 내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았다. 몸만 컸지 나이는 아이라 늘 급하게 겅중겅중 뛰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오랜만에 시골에 간 날이었다. 개집을 지나치던 나와 그런 나를 반가워하던 알베르토가 부딪힌 것은 순전한 사고였다. 닳아있던 목줄이 끊기는 동시에 알베르토가 퍼얼쩍 뛰었다. 힘없이 거꾸러지는 내 위로 당황한 알베르토의 짖음이 울렸다.      


시끌벅적한 어른들의 소리. 그리고 질질 끌려나가는 개의 안타까운 낑낑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네 잘못이 아닌데. 뭐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개의 성장을 방치한 집주인의 잘못이겠지만 아무도 감히 인간을 탓하지 않았다. 나는 알베르토에게 물리지도 않았고, 다만 넘어지면서 돌부리에 찍힌 무릎에 애매한 흉터가 졌을 뿐이지만. 알베르토는 응당 인간을 다치게 한 죗값을 치러야 했다.      



그날 이후로 알베르토의 목에는 쇠 목걸이가 채워졌다. 그마저도 맞지 않는 목걸이라 이리저리 대가리를 돌릴 때마다 컹, 캥, 하는 속 타는 소리가 들렸다. 짧게 개집 지붕에 이어진 쇳줄은 알베르토가 사람에게 다가갈 때마다 챙, 소리를 내며 그를 저지했다. 알베르토는 어쩔 줄 모르며 그 짧은 줄 안에서 서성거리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목이 졸려 괴롭게 쉬는 숨소리가 새액색 담장을 넘었다. 나는 미안함에 그 앞을 오가며 좋아하던 족발 뼈라든지, 기타 살이 붙은 고기들을 두어 번 그 프라이팬에 넣어주었다.      


버릇 나빠진다.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내밀었다는 점이 날 우쭐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람이라 미안하다. 뭐 그런 시시한 말은 않았어도. 내 태도에서 드러나는 얄팍한 우월감을 알베르토는 분명 읽었을 것이다. 알베르토는 똑똑한 개였으니까. 나는 그 축축하게 시든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텅 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없이 프라이팬에 코를 박던 첩첩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가끔 수화기 너머로 고성이 오고 갔고 아빠는 화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몇 번 정도 전화가 왔다 갔다 했지만 얼굴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그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시골에 갈 일이 없었다. 알베르토는 흐려졌다. 길을 걷다가 선한 얼굴의 웃고 있는 개들을 보면 시골에서 보던 그 개가 생각이 났다. 단지 그뿐이었다. 화해 못한 것 같은데. 가끔은 그런 생각도 지나갔다.      


그 시골집 개 죽었다 하던데.     


점심메뉴를 말하듯 태연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것은 나뿐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떨군 채 각자 하던 일들을 이어갔다. 왜? 나도 모르게 되묻는다.


뭐 잘못 먹고 죽었나 보든데. 병들어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갑자기 간 개는 먹지도 못해 찝찝해서. 그냥 어디 산에 묻어줬다더라. 아빠의 덤덤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무릎을 덮은 손은 그날의 흉터를 깔짝거리고 있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흉터가 갑자기 아플 수도 있을까. 퍽 하고 터진 눈물이 사이렌처럼 온 동네를 울렸다.      

그니까, 목줄이, 흑. 고기도 안 먹구, 큰 엄마가. 내가, 사과했는데.   

  

두서없이 펼쳐진 말은 눈물에 밀려 툭툭 끊어졌다. 대충 단어를 주워들은 엄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게, 시골 개한테 정 주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빠를 나무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질세라 더 커지는 서러운 울음소리 끝에는 뭐가 걸려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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