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Sep 27. 2023

인생은 미완성, 사랑도 미완성, 글도 미완성

얼마 전에 글을 하나 썼어요. 생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익어가는 망고를 보며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 건 아닐까 하는 글이었죠.


완결되는 삶이란 없고 다만 완성을 향해 가는 길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이게 엉터리 생각일지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섣불리 말하고 섣불리 타인을 단정하진 않을 테니 최소한 저에게만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러길 바랐죠.


저의 필명은 배가본드(Vagabond, 방랑자)예요. 그런데 저뿐 아니라 누구나 잠깐 다녀가는 방랑자 아닐까요. 몇 살까지 살더라도 그 삶은 그리다 만 그림이 될 걸 알아요. 하루하루 완성을 향해 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부족한 상태일 것을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완성의 상태로 뛰어가기 때문에 미완성은 그만큼 아름다워지는 거겠죠.




누군가의 눈앞 5cm에서 사랑한다고 말해 본 적 있나요? 음, 무지 힘들지 않던가요. 사랑해요라고 말하거나 쓰는 게 힘든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한다는 그 말보다 훨씬 커서죠.


그런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마음보다 작게 나갈 수밖에 없는 말. 그 차이가 괴로워서 우린 차라리 '아무 말 없음'을 택하기도 하죠. 그러다 있는 힘을 다해서 일단 그 말을 하면, 말로 나가지 못한 건 물로 나가요. 맘과 말의 딱 그 차이만큼.


시인이라면 사랑 대신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말로 표현하려 하겠죠. 외로움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외로움을 말하는 게 시니까. 맘과 말의 차이를 줄이려고 몸부림치는 게 시인이니까. 그렇지만 시인이라고 맘과 말의 차이가 없을까요. 어떤 말은 어떻게 표현해도 맘과 차이가 없을 수가 없어요. 그나마 '이거'라도 좋다면 그 차이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진 모르겠지만 저는 그조차 못 되니 환장할 노릇이죠. '이거'란 뭐냐고요? 뭐긴 뭐예요, 이거죠.

'표현의 역설' 정도로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린 뭔가를 말하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정만큼 표현하지 못해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거죠. 사랑한다는 말은 태생적으로 미완성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그걸 말하고 표현해야 하는 건, 어떻게 표현해도 미완성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표현할까 늘 고민해야 하는 건, 그렇게라도 표현하면 할수록 그 마음은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죠.




매일 글을 써요. 브런치 발행을 매일 하지 않을 뿐 날마다 뭔가 끼적대긴 해요. 필사일 때도 있고, 나중에 글이 될지도 모르는 생각 붙잡기일 때도 있고, 브런치나 블로그에 실제 올리는 글일 때도 있고, 아예 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글일 때도 있어요. 보통은 하루나 이틀에 하나 정도지만 삶 전체가 통째로 하나의 큰 글이라면 그건 평생 써도 결국 완성되지 못한 글이죠.


누군가 물었어요. 당신 글에는 왜 댓글이 많냐고(많다기보다는 적은 구독자 수 치고는 많다는 뜻일 거예요). 그건 글에 빈 곳이 많아서죠. 실제로 제 글은 완성도가 떨어져요. 이건 저의 고질병인데 늘 어딘가 비어 있고, 뭔가 모자라고, 뭔가 문제를 제기하긴 하는 듯한데 무엇에도 명쾌하게 답을 내리질 못해요. 늘 그런 식이죠.


그런데 억지스러운 자기 위안일지도 모르지만, 브런치 글은 함께 쓰고 완성해 간다고 생각해요. 빈 곳은 어차피 읽는 분들께서 메꿔 주시니까요. 저의 생각의 끝점이 그분들 생각의 출발점이 되는 건데 그걸로 족해요. 그 이상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삶 전체를 큰 글로 보아도 쓰다 만 글이듯, 그 안의 작은 글 하나하나를 봐도 모두 쓰다 만 글이에요. 하지만 글 읽는 분들 중에 저만큼도 안 똑똑한 분은 없고 그 상태에선 무슨 글을 어떻게 써도 어차피 미완성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전화위복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니깐 글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발행하는 건 한결 쉬워지니 그것도 나쁘지 않던데요.




모든 것은 어차피 미완성이니 너무 애쓸 필요 없다고 결론짓는다면 제 생각하곤 달라요. 한 오래된 노래처럼, 삶은 쓰다가 만 편지, 부르다 만 노래, 그리다 만 그림, 새기다 만 조각이죠. 마지막까지 미완성에 머무르고 그렇게 될 걸 뻔히 알아도, 그래도--아니, 그렇기 때문에--곱게 쓰고, 부르고, 그리고, 새기길 원해요. 완성보다 더 아름다운 건 미완성인 상태에서 완성을 향해 뛰어가는 길 위에 있으니까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미완성의 역설이고, 미완성의 아름다움이에요. 갑자기 미완성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그것마저 헛갈리지만 제가 할 일은 그걸 따져 구별하는 것보다는 완성이라는 게 존재하는 영역이 실제로는 매우 드물다는 걸 아는 일, 대부분의 영역에선 뭘 해도 어차피 미완성이 됨을 알고 받아들이는 일 정도겠죠.


그러니 다들 함께 힘내기로 해요.

오늘도 우리는 아름다우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