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 일기
4월 23일, 토요일. 오늘은 내가 아빠의 간병을 마지막으로 하는 날이다. 3월 13일에 입원해 이틀 뒤인 3월 15일에 직장암 수술을 하고, 주말과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을 제외한 지난 모든 날을 아빠와 함께 보냈다. 식사로 따지면, 아빠와 총 100끼 정도의 식사를 함께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하루하루가 참 길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한 의사의 말처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몸이 힘든 건 점차 줄어갔다. 병원에서의 생활에 물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마음은 늘 힘들었다. 수술 직후 아빠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도. 온몸에 찾아오는 통증으로 아파할 때도. 소변 문제로 밤새 시트를 갈아댈 때도. 몸보다는 마음이 너무 많이 저렸다.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언제 나으려나”, “언제쯤 괜찮아지려나”하고 지새웠던 외로운 밤들이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아픔도 있었지만, 잔잔한 억울함과 분노, 공허함도 함께 있었다. 힘듦이 괜찮아짐으로 변하는 순간에 등장하는 짜릿한 기쁨도 있었다.
돌아보면 길어지는 병원생활에 어떻게든 정을 붙여보려고 여러 노력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차도 우려 마셔보고,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을 ‘햇빛 존’, 키 작은 대나무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대나무 존’으로 부르며 아빠와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음료 캐리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쓰임으로 내 기쁨을 찾기도 했다.
아빠와 단 둘이 이렇게 긴 여행을 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맛이랄 게 아예 없었지만, 가까이 마주 보고 100끼를 함께 먹은 것도. 힘든 하루를 잘 버텨냈다는 의미로 불 끄기 전 서로의 어색한 코를 부비 부비 한 것도. 아침이 되어 찌뿌둥한 얼굴로 서로의 불평과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도. 모든 시간이 처음이었다. 아빠와의 시간을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아빠의 소변을 수도 없이 비우고, 저린 다리를 셀 수 없이 주무르고, 밀린 회사 일까지 처리하는 날 보며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불안한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여행지, 힙한까페, 벚꽃사진을 찍어 올리는 SNS 속 친구들과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미워지려고 했다.
솔직히 24시간 지속되는 내 노동에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 같다. 아픔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 사는 모습은 내 눈에는 전혀 안 괜찮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환자와 보호자들은 기꺼이 오늘을 살아간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정말 위대하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도 생각한다. ‘아무도 아프지 않은 세상은 없을까’하고 말이다.
내일이 아빠의 퇴원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도 우린 퇴원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엄마가 아빠의 간병을 시작하게 됐다. 우린 그렇게 또 주중엔 엄마가, 주말엔 우리(언니와 나)가 시간을 내어가며 숨 고르기로 아빠 곁에 있을 때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오늘로 난 공식적인 아빠의 간병을 졸업한다. 어제도, 오늘도 후회 없다. 앞으로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