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 일기
2022년 4월 30일. 우리 아빠는 병원에 입원한 지 46일 만에 퇴원을 했다. 46일 동안 짐이 너무 많이 늘어 버거울 때쯤, 아빠와 간병을 하는 엄마도 더 이상 미룰 곳 없이 지쳐 보였다. 완치를 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퇴원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병원에 더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자진해서 퇴원 결정을 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퇴원 소식에 마음 한쪽이 심히 설레었지만, 아픔이 지속되는 아빠에게 ‘퇴원’이라는 단어가 불안함으로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아빠는 무거운 몸으로 등장했다. 항문 쪽 염증 치료를 더 해야 하기 때문에 호수와 기계를 달고 나왔다. 예전에는 지팡이 2개를 양쪽으로 짚으면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예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병원복을 벗은 아빠의 차림새는 입원할 때와 같은데, 몸은 좀처럼 가볍지 않더라. 그래도 보랏빛이 은은하게 도는 카라티에 얇은 초록 바람막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빠의 모습은 정말 반가웠다!
맑은 하늘과 새록 새록한 나무들이 아빠를 격하게 환영했다. 모든 곳이 액자 속 그림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아무 선물을 하지 않았는데, 병원 밖 세상은 그 자체로 아빠에게 선물이었다. 빼곡하게 서울 방향을 향하는 차들도 예뻐 보였고, 흩날리는 꽃가루도 유난히 더 찬란해 보이는 그런 날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지 첫 골목만에, “퇴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퇴원은 했지만, 집에서의 생활은 병원과 다를 게 없었다. 집 안에서 수동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고, 장루를 매번 갈아줘야 하고, 잠에 들 때도 소변 줄을 연결해야 한다. 아프면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를 먹거나 패치형 진통제를 붙여야 한다.
하지만 큰 TV로 남들과 타협하지 않아도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볼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다. 큰 창으로 비추는 따스한 햇볕 아래서 맘 편히 낮잠도 잘 수 있다. 더 이상 새벽 1시, 4시 반에 깨워지지 않아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침대 위에서 스르르 잠에 들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예전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당분간 나는 아빠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을 거다. 퇴원했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고 억지 부리지도 않으련다. 아빠가 괜찮다고 할 때까진 괜찮은 게 아니기에. 아직 아빠는 ‘내 곁에 환자’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은 혼자 하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서로 도움을 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주어진 일을 마치고 본가로 향한다. 아빠가 암 소식으로 불안해할 때, “간병인의 도움없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해줄게.” 했던 말을 드디어 지켜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요목 조목 살피며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니. 2022년 복 한꺼번에 정산 받았다!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외쳐본다.
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