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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y 03. 2022

[입원일기 #16] 와! 퇴원이다!

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 일기

2022년 4월 30일. 우리 아빠는 병원에 입원한 지 46일 만에 퇴원을 했다. 46일 동안 짐이 너무 많이 늘어 버거울 때쯤, 아빠와 간병을 하는 엄마도 더 이상 미룰 곳 없이 지쳐 보였다. 완치를 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퇴원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병원에 더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자진해서 퇴원 결정을 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퇴원 소식에 마음 한쪽이 심히 설레었지만, 아픔이 지속되는 아빠에게 ‘퇴원’이라는 단어가 불안함으로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아빠는 무거운 몸으로 등장했다. 항문 쪽 염증 치료를 더 해야 하기 때문에 호수와 기계를 달고 나왔다. 예전에는 지팡이 2개를 양쪽으로 짚으면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예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병원복을 벗은 아빠의 차림새는 입원할 때와 같은데, 몸은 좀처럼 가볍지 않더라. 그래도 보랏빛이 은은하게 도는 카라티에 얇은 초록 바람막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빠의 모습은 정말 반가웠다!

올 해 봄은 유난히 더 화창한 것 같다.

맑은 하늘과 새록 새록한 나무들이 아빠를 격하게 환영했다. 모든 곳이 액자 속 그림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아무 선물을 하지 않았는데, 병원 밖 세상은 그 자체로 아빠에게 선물이었다. 빼곡하게 서울 방향을 향하는 차들도 예뻐 보였고, 흩날리는 꽃가루도 유난히 더 찬란해 보이는 그런 날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지 첫 골목만에, “퇴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사실 퇴원은 했지만, 집에서의 생활은 병원과 다를 게 없었다. 집 안에서 수동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고, 장루를 매번 갈아줘야 하고, 잠에 들 때도 소변 줄을 연결해야 한다. 아프면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를 먹거나 패치형 진통제를 붙여야 한다.


하지만 큰 TV로 남들과 타협하지 않아도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볼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다. 큰 창으로 비추는 따스한 햇볕 아래서 맘 편히 낮잠도 잘 수 있다. 더 이상 새벽 1시, 4시 반에 깨워지지 않아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침대 위에서 스르르 잠에 들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예전의 나는 알지 못했다.

외로웠던 병원생활.

당분간 나는 아빠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을 거다. 퇴원했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고 억지 부리지도 않으련다. 아빠가 괜찮다고 할 때까진 괜찮은 게 아니기에. 아직 아빠는 ‘내 곁에 환자’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은 혼자 하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서로 도움을 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주어진 일을 마치고 본가로 향한다. 아빠가  소식으로 불안해할 , “간병인의 도움없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있게 해줄게.” 했던 말을 드디어 지켜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요목 조목 살피며 하루를 마무리   있다니. 2022  한꺼번에 정산 받았다!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외쳐본다.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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