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난 오솔길로 가보아도 될까?
<동물길>
미래의 나에 대해 쓰려고 하니 자꾸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돼. 언젠가 내가 살고 싶은 모양의 삶을 지금 시도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거든.
나는 ‘연결’되는 삶을 꿈꾸고 있어. 사람과, 비인간동물과, 식물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생명들과 훨씬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던 시절에 대한 동경이 있어. 그들은 땀과 정성과 시간이 깃든 농작물을 수확하면서 흙을 파다가 만난 꿈틀거리는 지렁이에 놀라다가도 우리 땅을 잘 부탁한다며 지렁이의 존재에 안심하기도 했을 거야. 그들은 어느 날 집 현관에 들락거리며 진흙을 물어다 나르는 제비를 발견하고는 이후 제비 부모가 쉴 틈 없이 먹이는 새끼들이 모두 잘 자라 같이 날아가기를 간절히 바랐을 거야. 그들은 밭에 새로 돋아난 순을 먹으러 오는 고라니가 얄밉다가도 새끼를 배고 부푼 배를 이고 찾아오면 마음이 누그러졌을 거야. 그들은 기르는 소, 돼지, 닭과 유대감을 쌓으며 나이 들다가 필요한 시점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의 살에서 영양소를 섭취했지. 마을 사람들과 서로 일손을 돕고, 마을 아이들이 반갑게 부르는 이모, 삼촌, 할머니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을 거야.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단절되고 분리된 지점들이 많아. 나는 비가 온 후 아스팔트 위에서 위태롭게 움직이는 지렁이를 흙으로 데려다주지만, 흙이 있는 구역은 좁게 툭툭 끊겨 있어서 지렁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생의 위협을 받으리라 짐작해. 강원도 시골에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일하던 시기엔 구조된 동물을 돌보다가 어둑한 밤에 운전해서 퇴근할 때면, 내 차 앞에 갑자기 노루가 튀어나올까, 낮게 나는 새가 앞 유리창에 부딪힐까 노심초사하고는 했어. 나로 인해 피해를 당한 야생동물의 죽음을 보면 내가 죄책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어. 전국의 돼지 농장을 다니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나는 돼지가 ‘살아가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깨닫고 놀랐어. 몽골 여행에서 유목민들이 키우는 양, 염소, 말 등의 가축들이 살아있는 동안 산이든 절벽이든 원하는 곳에 가서 풀을 뜯는 모습이 당연하다는 것이 가장 좋았어. 좋아하던 카페가 ‘노키즈존’이 된 것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해.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는 어르신을 보며 지금도 편리한 기술을 또래에 비해 제일 늦게 접하는 나는 노후에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게 될까 생각해.
이런 울렁거림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남들보다 에너지가 소진되는 때가 일찍 찾아오는 것 같아. 앞으로 나와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 거치면 좋을, 분명 도움이 될 단계를 알고 있는데, 지금 나의 몸으로는 그 단계를 밟을 엄두가 안 나. 비인간동물의 아픔을 치료하는 일은 그 생명과 적극적으로 연결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기에 그 책임이 벌써 무겁게만 느껴지고 나를 긴장 속에 살게 할 것 같아. 근 일 년간 그러한 긴장 속에서 내 몸이 어떻게 아우성을 치고 망가지는지를 경험했으니 더 두려운가 봐.
곧장 갈 수 있는 포장된 길을 지나치고 곁에 난 오솔길로 가보아도 될까? 다섯 발가락이 찍힌 오소리의 발자국에 호기심이 일어 그 발자국을 따라가 봐도 될까? 그렇게 도착한 오소리 굴 주변에 쪼그려 앉아 오소리가 언제 오나 기다려 봐도 될까?
천수만에서 너구리와 삵의 발자국을 비교하며 걷던 때를 떠올려. 지리산을 오르며 나무줄기에 묻은 진흙과 함께 멧돼지의 털이 박힌 것을 보고, 멧돼지가 진흙 목욕을 한 뒤 여기에서 몸을 비볐으리라 유추하기도 했지. 야생동물의 흔적을 조사하는 방법을 배우는 현장 교육에서 동물이 주로 다니는 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멈추고는 했어. 누구는 저 먼 하늘에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새의 날갯짓을 보며 어떤 새 인지 옆 사람에게 알려줬어. 누구는 멧돼지의 비빔목 옆에 있는 버섯을 눌러보며 포자가 날아가는 걸 보여줬어. 누구는 뱀이 벗어놓은 허물을 보며 어떤 뱀일까 추측하고, 누구는 간밤에 가로등 빛에 모여든 곤충들을 살폈어.
동물길을 함께 걸으며 자주 멈추어 작은 생명들을 관찰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왔듯이, 나의 시선이 다른 누군가의 산책에 자연스레 스며들기를 원해. 나는 산책을 하면서 사진에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을 내가 느끼는 대로 그림에 담고는 해. 그 순간에 풍겨오는 향, 내 살에 닿는 햇빛과 바람, 온갖 생명이 움직이는 소리를 짚어가며 글을 쓰기도 하지. 오래도록 기억하고픈 그때의 감각을 잘 담아낸 자체로 만족스럽지만, 내 글과 그림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음으로써 자연과 연결되는 동지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 쌍안경을 통해 초코볼 같은 뱁새의 눈을 마주칠 때의 기쁨과 볼 빨간 직박구리가 맛있게 먹는 열매를 궁금해하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 마음 가는 대로 걸으며 피어나는 궁금증을 함께 나누고 키워가는 동지로서, 때로는 안내자로서 하는 산책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