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가까운 시선

네잎클로버가 불러오는 만남의 행운

by 안하림

"우리 네잎클로버 찾자!"

보호자의 외침에 바로 잔디밭에 웅크려 앉아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이다. 30초나 지났을까. 한 아이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당당하게 내밀어 보인다. 보호자의 단호한 대답이 이어진다. "네잎클로버는 잎이 네 개야." 그리고 아이는 실망한 기색 없이 씩씩하게 말한다. "나도 알아! 네! 잎!" 아이의 움켜쥔 손에는 세잎클로버와 함께 다른 클로버에서 똑 떼어낸 잎 하나가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나와 아이들 간의 거리만큼 떨어진 다른 방향에는 참새들이 여럿 모여 있다. 참새의 등을 내려다보는 대신 몸을 낮추어 참새의 얼굴 옆면과 옆구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토끼풀의 하얀 꽃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참새 옆에 있는 토끼풀은 더 이상 보잘것없이 작은 것이 아니게 된다.


네잎클로버 찾기는 초록과 멀어진 도시 아이들에게도 비교적 친근한 놀이이다. 이 놀이에서 목표했던 모양의 행운을 찾지는 못할지라도, 예상치 못하게 기쁜 만남을 찾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일 년 전 지리산 생태탐방원에서 숲해설가 선생님을 보조하며 일경험을 하고 있었다. 가족 단위로 자주 찾는 생태탐방 프로그램은 사계절 푸른 나무 찾기, 달라붙기를 좋아하는 도꼬마리 씨앗을 던져서 밸크로 과녁에 맞히기 등의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미션을 척척 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션을 빠르게 해내는 데에 여념이 없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더욱 시선을 끄는 것이 생기면 다른 길로 새기 일쑤다. 나와 같이 괭이밥 잎을 맛보았던 가족과의 일화가 떠오른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에게 나무와 풀이 있는 마당은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 아니고 보물이 숨겨져 있는 놀이터이다. 어느새 한 아이가 쪼그려 앉아 네잎클로버 찾기에 돌입하고, 덩달아 그 동생과 엄마도 몸을 낮추어 땅을 살피기 시작한다. 아이 아빠는 다음 미션을 해야 한다며 마음이 급해진다. 나는 아이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클로버라 불리는 토끼풀과 비슷한 듯 다른 괭이밥을 찾아 보여준다. 물방울 모양의 낱 잎으로 이루어진 토끼풀과 달리, 괭이밥은 하트 모양의 낱 잎 세 개가 하트의 꼭짓점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있다. 괭이밥 잎을 똑- 뜯어 내 입에 넣는다. 자두 껍질같이 시큼한 맛이 난다. 나는 '고양이밥'이라는 뜻을 가진 괭이밥이 고양이가 소화 안 될 때 먹는 식물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아이 엄마는 호기심이 어려있지만 멈칫하는 표정의 아이들보다 앞서서 괭이밥 잎을 우물우물 씹는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환한 표정으로 정말 신맛이 난다며 아이에게도 아이의 할머니에게도 맛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마치 내가 처음으로 초록 잎에서 전혀 연상되지 않았던 열매의 맛을 느끼고는 이 놀라움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벤치에 앉아 있던 아이의 할머니는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는 담담한 말투로 신맛 나는 그 풀을 어릴 때 많이 먹었다고 말한다. 아이 아빠는 여전히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지만 더 이상 가족들을 재촉하지는 않는다. 간만에 땅과 가까워진 아이 엄마의 시야에 자주색 들꽃이 들어온다. 진분홍빛 대롱이 아래로 갈수록 입을 벌린 듯한 모양의 꽃이 꽃대를 따라 세로로 줄지어 매달려 있다. 그녀는 작지만 색이 또렷하고 개성 있는 이 들꽃을 생애 처음으로 본다. 나도 그해 봄에 처음 만난 갈퀴나물이다. 토끼풀처럼 괭이밥, 갈퀴나물도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지나치는 들풀이다. 들풀과의 만남은 평소와 시선을 달리 할 때에 찾아온다.


공원에서 산책하다 보면 보호자의 줄 당김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팅기는 개가 한 곳에서 쉴 새 없이 냄새를 맡고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네 발로 걷는 개의 시선에서는 한 걸음마다 다른 향과 질감과 모양의 들풀이 나타날 테다. 그러니 궁금한 것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의 시선 또한 키가 큰 어른에 비해 훨씬 땅과 가깝다. 땅에서 피어난 하늘색의 작고 명랑한 꽃을, 제 몸보다 큰 먹이를 지고 가는 개미의 움직임을 마주칠 기회가 많다. 이미 훌쩍 자라 땅과 멀어진 어른은 가까이할 수 없는 세상일까?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곳에 아이가 멈추어 무언가를 보고 있다면 그 시선을 따라 머물러 보자. 산책하는 개가 멈춰 서서 콧구멍을 바쁘게 실룩일 때에 옆에 쪼그려 앉아 같이 킁킁대보고 만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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