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걸으며, 피어나고 농익어가는 만남
<투명한 만남>
올봄에 연보라색 꽃을 피우는 등나무와 가까워졌다. 등나무는 놀이터 벤치 위의 통나무 지붕을 타고 올라 여러 갈래로 뻗친 가지가 얽히고설켜있다. 지금보다 놀이터에 자주 갔을 어린 시절에도 분명히 등나무가 물리적으로 아주 가까이 있었을 텐데, 이제야 그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벤치의 지붕 위를 덮는 나무가 있는 건 알았지만, 그 아래에 있을 때면 벌레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억뿐이다. 올봄에는 등나무와 다르게 관계를 맺었다. 바람에 등꽃이 일렁일 때마다 보랏빛 향기를 맡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등나무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펜을 잡고 내 마음대로 슥슥 가지를 뻗기 시작한다. 등나무의 굴곡진 줄기, 예측할 수 없이 뻗어 나가고 꼬부라지는 가지, 그리고 살랑이면서 맑디맑은 소리가 울릴 것 같은 등꽃의 꽃차례를 보고 또 본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그리고 있으니 등나무 아래에서 비둘기들이 구구- 소리를 내며 구애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린 나는 비둘기가 더럽다는 어른들의 시선을 그대로 배운 탓인지 비둘기를 무서워하며 피하고는 했다. 지금은 비둘기가 내 발 옆을 지나가든 갑자기 푸드덕 날아가든 그저 바라본다. 그렇게 등나무와 함께 비둘기들이 사랑을 구하는 순간을 그렸다.
등나무와 연을 맺은 첫해다. 해마다 연을 맺고 이어가는 식물, 비인간동물, 인간동물이 있다. 각기 다른 생명에 나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해가 지날수록 더 풍성한 만남을 갖게 된다. 단풍나무 새싹을 만나면, 단풍나무가 속살을 드러낸 곳의 야트막한 흙에서 아기 단풍나무가 피어난 것을 발견한 봄을 떠올린다. 그 발견의 기쁨을 함께 나눴던 친구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가족과 여행을 간 바닷가 숙소의 통유리창 밖으로 바삐 날아다니는 제비를 만나면, 유리창에 충돌해 뇌신경을 다친 증상을 보이던 제비를 떠올린다. 혹여 생명력 넘치는 저 제비가 내가 보고 있는 이 창에 날라와 부딪힐까 노심초사한다. 장수풍뎅이를 만나면, 어느 여름의 시골살이 동안 매일 계곡 옆길을 따라 걷는 출근길에서 몸이 뒤집힌 채로 버둥거리던 장수풍뎅이를 떠올린다. 만날 때마다 몸을 바로 세워 나무 밑동에 올려 주었지만 다리를 다친 듯했고, 연을 맺은지 4일째 되던 날 여기저기 장수풍뎅이의 흔적이 흙에 흩어져 있었다.
투명한 만남도 있다. 사람들이 ‘노는 땅’이라 말하는 곳에 덤불과 갈대밭이 무성한 걸 보면 고라니들이 숨기에 좋겠다고 생각한다. 수북이 덮인 낙엽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 들썩임이 여기에서 저기로 이어지는 걸 보면 저 아래에 땃쥐가 움직이고 있을까 상상한다. 단풍나무에 핀 꽃을 보면 이 자리에 맺힐 앙증맞은 열매가 연두색에서 분홍색으로 변화할 과정을 떠올린다. 오늘도 걸으며 다채로운 만남을 가진다. 새롭게 피어나는 만남도 있고, 농익어가는 만남도 있다. 내 이름의 뜻처럼 나의 세상은 여름의 숲처럼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한밤의 여름 숲에는 소-쩍, 소-쩍! 정겨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찬 비가 내리던 날 어미를 잃고 구조된 새끼 소쩍새를 돌보던 여름을 떠올린다. 부숭한 깃으로 뒤덮여 꼭 먼지 같던 새끼 소쩍새에게 밀웜을 먹이고, 똥이 건강한지 살피는 일상이었다. 새끼 새들을 돌보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그해 여름, 나는 그들의 작은 변화에도 자주 당황하고, 혹시 내가 몰라서 못 해주는 것이 있을까 긴장한 채로 지냈다.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구조된 세 마리의 새끼 소쩍새를 같이 돌보던 동료들과 그들의 각기 다른 먹이 반응과 성격에 대해 말하며 웃음 짓고는 했다. 그들은 우리의 간절한 바람대로 다행히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날고, 언제 사람이 먹이를 줬냐는 듯 사람을 피하며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캄캄한 숲에서 소쩍새 소리가 들릴 때면, 나무줄기와 한 몸이 된 듯한 소쩍새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들이 잘 지내고 있을까, 같이 자라나며 생김새도 성격도 닮아갔던 세 친구들은 가끔 서로를 만날까,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낯설고 이상한 기억을 어떻게 말할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의 숲은 누군가와 연결되었던 시절을 담으며 색을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