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노인과 바다>,
그리고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으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어릴 적 워낙의 예쁜 외모를 갖추어서인지,
어머니가 자주 여장을 시켰고.
이로 인한 반발심(?)이었는지
헤밍웨이의 남성성을 향한 갈망은 더 세지기만 한다.
(또한, 이 때문이었는지 어머니와는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일부러 더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녔고,
그의 나이 18살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발적으로 육군에 지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낮은 시력으로 탈락 후,
이탈리아 야전병원의 수송차 운전병이 되고,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된다.
헤밍웨이에게는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이 있었고,
많은 여성 편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여자와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
"그대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기꺼이 가겠고,
아니,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답니다. 당신의 우아함은
어느 누구한테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대의 치명적인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은
나를 금방 얼어붙게 하지요"
고등학생이었던 헤밍웨이가
같은 고등학교 1년 후배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의 일부다.
그러나 둘은 1차 세계대전 중에 헤밍웨이가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헤어진다.
성인이 된 헤밍웨이의 첫사랑은
7살 연상이었던 적십자 간호사 애그니스 폰 쿠로프스키.
전쟁 중 두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긴급 수술을 받고 나서 여섯 달간 병원에 머무르게 된다.
그때 적십자 간호사였던 애그니스와 사랑에 빠진다
.
건강을 되찾고 나서, 1919년 1월 미국으로 돌아온 헤밍웨이는
아그네스와 결혼까지 생각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그녀로부터 온 편지 내용은 '이별'이었다.
한 장교와 사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의 실제 모델이
애그니스 폰 쿠로프스키다.
이후 친구들과 함께 살기 위해 시카고로 거처를 옮긴 헤밍웨이는
자신의 룸메이트를 찾아온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약 2년 뒤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난 첫 번째 아내가 바로 해들리 리처드슨.
8살 연상이었으며, 순수하고 따뜻한 피아니스트였다고.
하지만 전쟁터에서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핑계)
방황과 방탕 사이 어딘가를 돌아다니던 헤밍웨이는
결국, 아내 헤들리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폴린 파이퍼와 만나기 시작한다.
헤들리와 함께 하던 시기, 헤들리를 위해 헤밍웨이가 썼던 소설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인데,
해들리는 이 책의 로열티를 이혼한 후에도 계속해서 받았고,
이 소설이 영화로 나왔을 때도 그 이익금을 받았다고. (1957)
두 번째 아내인 폴린 파이퍼는 그보다 4살 연상인 잡지 기자였고,
파리 Vogue사에 근무하던 중 헤밍웨이를 알게 된다.(1927.01)
그리고 헤밍웨이는 해들리를 떠난 뒤 그와 재혼했다. (1927.05)
헤밍웨이는 부유한 가톨릭이었던 폴린과 결혼하기 위해,
개종까지 감수한다.
그리고 그녀의 부유한 삼촌으로부터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집을 선물로 받았는데
수영장 가치만 지금 돈으로 25만 달러 정도라고.
여기서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등을 집필한다.
두 번째 아내와는 13년을 살았지만,
특파원 출신이었던 세 번째 아내와 사랑에 빠져서
쿠바로 도망친다.
헤밍웨이는 두 번째 아내였던 폴린과 1940년에 이혼을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3주 뒤,
세 번째 아내 마사 겔혼과 결혼하고
쿠바에서 삶을 시작한다.
마사는 스페인 내란 취재를 위해 함께 갔던 기자였다.
이때 헤밍웨이가 집필한 책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였다.
'마서'는 취재광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내가 가정적이길 바랐던 헤밍웨이와는 맞지 않았다고.
이에 관해 <찌질한 위인전>의 작가 함현식은
헤밍웨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비판한다.
"헤밍웨이는
지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에 끌려 불륜을 했으면서도,
막상 결혼하고 나면
아내가 집안에 머무르는 가정적인 여자가 되길 강요했다"
결국, 그보다 더 강한 성격이었던 마사가 먼저 등을 돌렸다.
마지막 아내는 타임지 기자였던 메리 웰시.
훗날 아들 잭은
"헤밍웨이가 메리를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했다면, 모두 그를 떠났을 것"이라며
아내에게 함부로 대했던 헤밍웨이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헤밍웨이는 반복되는 사고와 정신 질환,
그리고 전기충격 치료로 인한 혼란 속에서
점점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두려워했다.
결국 1961년 7월 2일,
자신의 집 현관에서 스스로 엽총을 들어 자살한다.
메리는 침실 옆 방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전쟁 때 얻은 부상과
아프리카에서 겪은 두 번의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갔고,
우울증이 특히 심했다고.
그는 끝내 사랑 안에서 정착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강한 사람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남자였을까.
어쩌면 누구보다 이기적이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아한 문장을 쓰는 작가가 있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의 첫 장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출판사에 소개해 주며,
그의 문단 데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둘은
파리의 카페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문학과 인생을 논하던 절친한 동료였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를 점점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점점 삶이 힘들어지는 피츠제럴드를 보면서,
그가 아내 젤다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피츠제럴드의 성적인 콤플렉스를 조롱하는 내용까지 남겼다.
이러한 공격은 단순한 농담을 넘어,
작가로서의 열등감과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질투는 결국 그들의 우정을 깨뜨렸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이 작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면,
다음 다섯 권을 추천.
작품 속 어딘가에,
그가 감추고 싶어 했던 진짜 얼굴들이 숨겨져 있다.
가장 짧고 가장 깊은 소설.
말년에 쓴 이 작품은 헤밍웨이 스스로
“내가 쓴 최고의 문장”이라 말했다죠.
짧지만 여운이 길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파리, 술, 방황,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의 초상을 그린 작품
젊은 날의 허무와 무기력,
사랑과 욕망이 뒤엉킨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들이랄까요.
전쟁과 사랑, 그 사이에 머무는 감정.
헤밍웨이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든 이 작품.
전쟁이 인간의 감정에 어떤 균열을 내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줍니다.
신념과 사랑이 부딪힐 때.
스페인 내전과 종군기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한 인간이 믿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가장 ‘헤밍웨이스러운’ 서사랄까요.
헤밍웨이의 회고록. 파리의 봄날 같은 이야기.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거장들이 거닐던 파리의 1920년대를 돌아보며 쓴 자전적 에세이.
소설과는 또 다른,
더 친근한 말투의 헤밍웨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