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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Han Kang한강

21세기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담당한



고요하지만 뜨겁게

— 작가 한강의 삶과 문장 사이


어떤 문장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큰 울림이 됩니다.
한강 작가의 문장은 그렇죠.


그녀는 어떻게 그런 문장을 쓰게 된 걸까요?
오늘은 21세기에 한국 문학을 세계화로 이끄는데 앞장서는

가장 부드럽고 차분한 문체의 작가, 한강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1. 한강의 어린 시절

– “글을 쓰기 전, 나는 그저 바라봤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1979, 8살 한강 작가의 시

소설가 한강의 어린 시절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제주도 서귀포.

아버지는 소설가이자 시인 한승원.


제주의 바다와 나무, 햇빛과 바람 속에서

한강은 늘 관찰하는 아이였다고 해요.


조용하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무엇보다 ‘말하지 않고도 느끼는 법’을 배운 시기였다고.

소설가 한강의 어린 시절

하지만 서울로 전학 온 뒤, 적응은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 경쟁, 그리고 끊어진 감정.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상실을 알았다”라고 말하죠.


고등학생이 된 한강은 그림을 그리다

목 디스크로 손을 놓아야 했고,

대신 펜을 잡습니다.


그렇게 글쓰기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가 됩니다.




2. 20대의 한강

– “나는 늘 아프고, 사랑했고, 쓰고 있었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좌)/ 한강 작가(가운데)

이십 대의 한강은 시인으로 문단에 들어섰지만,

내내 소설을 꿈꿨습니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고,

등단 이후엔 조용히 작품을 써 나갔죠.


“저는 늘 몸이 안 좋았어요.
오래 누워 있어야 했고, 어딘가 불편했죠.
그래서 글을 썼어요.
다른 어떤 노동보다 저에게 가능한 일이었거든요.”



몸이 약했던 그녀는

세상과 약간 거리를 두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문장은 늘 약한 자의 시선으로, 조용히 말합니다.

그 시절 그녀는 혼자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묵묵히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젊기 때문에 어두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 생각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밝아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상처가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EBS교양 (당시 27세의 한강작가)





3. 결혼과 이혼

– "사랑은 아름다웠고, 끝은 고요했다"


소설가 한강(왼쪽 두 번째), 아버지 한승원 작가(맨 오른쪽), 어머니 임감오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남편이자 문학평론가인 홍용희 평론가(맨 왼)

한강 작가는 홍용희 문학평론가와 결혼했지만,

이후 조용히 이혼했습니다.


공식적인 이혼 사유는 알려진 바 없지만,

서로의 문학 세계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과 사랑, 그리고 끝에 대해

자주 말하진 않았지만,

작품 곳곳에는 그 흔적들이 배어 있죠.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세상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고, 현재로선 살아갈 만하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번 살아보게 한다 해도 죄짓는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그 아이가, 하고 나는 말했다.

그 아이가 그 생각에 이를 때까지, 그때까지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몫도 결코 아닌데.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겪게 해?


......... 왜 그렇게만 생각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말했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거,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것은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탕처럼 부스러지는 붉은 수박의 맛을 생각하며,

웃음 끝에 나는 말을 잃고 있었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을 베어물 때, 내가 아무런 불순물 없이 그 순간을 맛보았다는 것만은.


-한강, 「침묵」 중






4. 지금의 한강

소설가 한강

현재의 한강 작가는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SNS도 하지 않고, 강연도 드물죠.

인터뷰도 거의 응하지 않아요.


“지금은 그냥, 글을 쓰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그녀는 여전히 아침마다 글을 씁니다.

걷고, 차를 마시고, 고요하게 살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로 번역되어 사랑받고 있고,

전 세대에게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낸 이후

2024년 12월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25년 4월 17일, 신작 예고 발표를 했습니다.




5. 그녀의 문체


1) 절제된 언어

한강은 감정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말로 다 설명하지 않고도 독자가 그 여백에서 감정을 ‘느끼도록’ 이끕니다.

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이런 식으로, 직접적 묘사 대신 간결하고 차분한 문장을 선택합니다.


2) 이미지 중심의 서술

색, 냄새, 촉감, 형태 등 감각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문체입니다. 특히 『흰』에서는 색깔과 사물 하나하나를 정지된 장면처럼 그려냅니다.

예: “흰 고양이가 그녀의 발밑을 스쳐 지나갔다. 털 끝마다 아침빛이 걸려 있었다.”

→ 시를 쓰던 감각이 소설 안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3) 침묵을 말하는 문장

한강의 문장은 자주 ‘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 침묵이 가장 큰 대답임을 알았다."

→ 이처럼 침묵, 정적, 멈춤이 그녀의 글에서는 감정의 가장 큰 표출이 됩니다.


4) 폭력과 아름다움의 공존

잔혹한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그 문장 자체는 차분하고 아름답습니다.

『채식주의자』에서 가족에게 억눌리는 영혜의 장면은 매우 폭력적이지만, 그 문체는 결코 날카롭거나 거칠지 않습니다. 오히려 섬세하고 미묘하죠.

→ 이로 인해 독자는 더 큰 충격과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5)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

전통적인 플롯 중심의 서사보다, 인물의 내면 흐름과 감각의 변화를 따라가는 글쓰기 방식입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인물의 ‘몸의 감각’과 ‘정신의 떨림’을 전달합니다.

요약하면

“비명을 지르지 않고도 고통을 전할 수 있는 문장”

이것이 한강 문체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6. 삶과 문학이 만나는 순간들


한강 작가의 소설은 결코 ‘창작’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삶이 녹아들었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이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실하죠.


『채식주의자』

육식을 끊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

“몸이 먼저 거부했다”라고.


『소년이 온다』

그녀의 고향 광주, 그리고 1980년 5월의 기억.


『흰』

유산의 경험과 잃어버린 언니의 이야기.

“흰 것들이 저를 위로했어요.”


『그대의 차가운 손』

인간의 생명, 여성의 몸, 장기기증에 대한 깊은 사유.


『희랍어 시간』

사라지는 언어와 죽음, 사랑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





7. 한강의 책, 이렇게 읽어보세요


✔️첫 입문자 추천 순서

한강 작가는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먼저 읽기를 권했고,

그다음으로 자전적 성격의 <흰>, <채식주의자>를 추천했다.


다만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서

감정적 묘사가 두드러진 작품들(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면


비교적 가벼운

<희랍어 시간>, <흰>, 또는 <회복하는 인간>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특히 <희랍어시간>은 매우 얇다)


『채식주의자』 – 그녀를 대표하는 문제작

『소년이 온다』 –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마주하는 책

『흰』 – 감각적인 언어의 향연

『그대의 차가운 손』 – 철학적 사유를 좋아한다면

『희랍어 시간』 – 가장 시적이고 잔잔한 작품


✔️ 수상 내역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붉은 닻>

1999년 제25회 한국소설문학상 <아기 부처>

2000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문학부문)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몽고반점>

2010년 제13회 동리문학상 《바람이 분다, 가라》

2014년 만해문학상 《소년이 온다

2015년 황순원문학상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6년 맨 부커 국제상 《채식주의자》

2017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제24회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채식주의자

2018년 김유정문학상 《작별》

2019년 인촌상 언론문화부문

2022년 제2회 용아문화대상

2022년 제13회 김만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작별하지 않는다

2023년 메디치 외국문학상 《작별하지 않는다

2024년 제7회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 《작별하지 않는다

2024년 삼성호암상 예술상

2024년 노벨문학상

2024년 포니정 혁신상

2025년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 국내 베스트셀러 순위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끝으로...

– “삶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다시 삶을 끌어안는다”


한강의 문장을 읽는 일은,

가만히 누워 누군가의 조용조용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조용히, 천천히 마음 안으로 스며들죠.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됩니다.


“아, 이 사람은, 온몸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구나.”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층위는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야 말로 내 삶을 관통하는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울림이 아니었을까?"

-한강 작가의 스톡홀름 한림원 강연 내용 중


소설가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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