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너머

#056

by 서하

보이는 것 너머

by 서하


하루 종일 웃던 사람이 있었다
그 웃음은 마치
너무 오래 꾹 눌러 담아
가장자리가 뜯긴 봉투 같았다


잘 다려진 말들 뒤에
잊힌 계절 하나가
말없이 제 무릎을 껴안고 있었다


나는 그를 모른다
아니, 눈길을 준 적이 없다


이름표보다 느린 손짓,
직함보다 먼저 다가온 어깨의 떨림을
나는 너무 환하게 켜진 조명 아래서
놓쳐버렸다


그러다
햇살이 너무 기울던 오후,
벽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를 지나칠 때
소리 없이 남기고 가는 것들을


보이는 것 너머엔
언제나 누군가의

버텨낸 시간, 견뎌낸 숨이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천천히,
당신을 바라보기로 했다



✥ 모티브: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3)


『보이는 것 너머』

진짜 ‘앎’은 멈춰 서서 그 사람의 그림자마저도 함께 바라볼 때 시작된다고.
‘보이는 것 너머’를 보려는 그 천천한 눈빛이 공동체를 하나로 엮는 시작이라고.
이 시를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