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호 Oct 11. 2019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다

이병률 시인의 '검은물' 감상

커피 내어주기를 망설이는 시인의 마음

일상에서 어떠한 체험을 하게 될 때 그 상황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이들이 시인이다. 시인들은 일상 안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느낀다. 이병률 시인의 「검은 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의 사건을 줄글로 요약하면 ‘칼갈이 부부를 집에 불러서 칼을 갈고 차도 대접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을 시로 풀어낸 작품은 매우 아름다워서 감동을 준다.




검은 물     


                                             이병률     


칼갈이 부부가 나타났다

남자가 한번, 여자가 한번 칼 갈라고 외치는 소리는

두어 번쯤 간절히 기다렸던 소리

칼갈이 부부를 불러 애써 갈 일도 없는 칼 하나를 내미는데

사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들어서기엔 좁은 욕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칼을 갈다 멈추는 남편 손께로 물을 끼얹어주며

행여 손이라도 베일세라 시선을 떼지 않는 여인     

서걱서걱 칼 가는 소리가 커피를 끓인다

칼을 갈고 나오는 부부에게 망설이던 커피를 권하자 아내가 하는 소리

이 사람은 검은 물이라고 안 먹어요

그 소리에 커피를 물리고 꿀물을 내놓으니

이 사람 검은 색밖에 몰라 그런다며,

태어난 한번도 다른 색깔을 본 적 없어 지긋지긋해한다며 남편 손에 꿀물을 쥐여준다

한번도 검다고 생각한 적 없는 그것은 검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사내의 어둠이 갈아놓은 칼에 눈을 맞추다가 눈을 베인다

집 안 가득 떠다니는 지옥들마저 베어낼 것만 같다

불을 켜지 않았다

칼갈이 부부가 집에 다녀갔다                                                                                


                                                                                           『바람의 사생활』, 창작과 비평사





 시는 칼갈이 부부가 시적 화자가 사는 동네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시적 화자는 ‘칼 갈라고 외치는 소리를 두어 번쯤 간절히 기다렸’다고 하는데 칼이 무뎌졌을 때 칼갈이 장수가 오지 않아 몇 번 어긋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칼을 갈 일이 있어 기다렸던 화자가 이번에는 별달리 칼을 갈 일이 없으면서도 칼갈이 부부를 부른다. 두어 번이나마 기다렸던 이들의 소리가 들리니 반가워서 일수도 있고 그저 호기심이 일어서라고 해도 좋겠다. 시적 화자는 이내 칼갈이 사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칼을 가는 이가 앞을 보든 그렇지 못하든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비용이나 지불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사내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다. 칼갈이 부부가 들어서기엔 좁은 욕실 바닥도 신경 쓰이고, 사내가 행여 손이나 다치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걱정이 되어서 부부가 칼을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내 그들 부부에게 커피를 대접한다. ‘칼 가는 소리가 커피를 끓인다’는 표현은 시적인 표현이지만 그렇게 특별한 표현은 아니다. 이 안에서 시적인 부분은 칼갈이 부부에게 커피를 대접하려는 화자의 마음이다. 커피라도 대접하려고 커피를 끓이고서도 자신의 행동이 그들에게 동정으로 비칠까 봐 망설인다.


 이번엔 시 속 다른 등장인물에게 눈을 돌려보자. 칼갈이 부부는 오래 함께 다녔을 것이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져 칼을 가는 일도 아주 능숙하게 한다. 처음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남편이 위험한 칼갈이 일을 한다는 것이 걱정이 되어 따라나섰을 것이다. 부인은 남편이 칼을 갈다 필요할 적마다 물을 끼얹어준다. 오래 해서 익숙해지고 숙달되었을 법도 하지만 매번 걱정이 되나 보다. 칼갈이 부부와 시적 화자, 이 시 안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선한 사람들이다. 시 안에서 선한 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상자도 먹먹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부부에게 커피를 권하자 부인으로부터 ‘남편은 커피가 검은 물이어서 먹지 않는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커피를 생각하면 향이나 맛을 먼저 떠올리지 검은 빛깔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는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시를 따라 읽다 ‘아차’하고 충격을 받는다. 한 평생 눈이 보이지 않아 온통 세상이 검었을 사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행여 칼갈이 부부가 불편할까 커피를 대접하는 것까지를 망설이던 선한 마음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다.


 칼갈이 부부가 떠난 후 그들이 갈아놓은 칼을 보던 화자는 ‘칼에 눈을 맞추다가 눈을 베인다’ 이 구절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겠지만 우선 ‘눈물이 났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눈물은 칼갈이 부부의 처지가 안쓰럽기에 나는 눈물이다. 울컥 눈물이 날 때는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지곤 하는데 칼에 손을 베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통증을 느낀다. 칼에 손이 베일 때는 울컥 눈물이 솟듯 갑작스럽기도 하고 베인 상처에서 훅하고 열이 나는듯하기도 하다.


혹은 칼갈이 부부를 만난 후 이전에 헤아리지 못하던 점을 깨닫게 된 데서 오는 충격을 칼에 베이는 것에 비유해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사내가 갈아놓은 칼은 화자의 눈만이 아니라 집안의 지옥들마저 베어버릴 것 같다. 여기에서 지옥은 ‘눈이 보이는 화자가 평소 지옥이라고 느꼈던 여러 상황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커피가 검은 물인 줄 모르고 맛있게 마셔왔으면서도 삶이 지옥이라 생각했던 화자의 인식이 베이는 순간이다. 화자는 불을 켜지 않는데 사내의 아픔을 느껴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고 이전까지 ‘커피를 커피로만 알고 마셨던’ 자신의 무심함이 맹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 불을 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화자는 그 이후로도 꽤 오래 불을 켜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