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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02. 2019

간극은 슬픔을 자아낸다

간극에 대하여 1.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를 자주 떠올린다. 초록과 빨강의 조합 탓이겠지만 늦가을의 주목 나무 열매만 보아도 크리스마스 생각이 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내게 크리스마스는 축제라기보다 서글픈 감정을 일으키는 날이어서 그와 관련된 여타의 감정들이 달갑지 않다. 감정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날엔 멀쩡하다가도 울컥 눈물이 솟았다.

 

이런 감정이 든 지가 오래이므로 글로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글로 풀어내다 보면 감정을 좀 덜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쌀쌀해지는 날씨와 더불어 일찍 찾아오는 어둠과 뒤이어 따라붙는 우울을 견딜 수 없어서 내린 처방이다. 그러나 글로 옮기기엔 그 감정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상황은 달랐지만 올해는 그런 감정이 빨리 왔다. 마트에서 추석이 온다고 너도 나도 내놓은 선물세트들을 보다가 그런 감정을 느꼈다. 얼마 전에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지하철을 가득 매운 사람들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감정이 왜 생기는지 알 것도 같다. 흥성흥성 들뜬 분위기, 서로 모여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를 힘들어하는구나.



아주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어울려 노는 일을 못했다. 5살 때 간 어린이집에서 내내 울어서 또래들과 떨어져 있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잘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중간층'에 애매하게 끼어있었던 탓에 타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 외톨이로 지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사람이 스펙터클 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교우 관계는 나아졌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하는 중간'에 머물렀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면 욕심이라도 없어서 적당히 살았으면 되었을 텐데 욕심은 많았다. 게다가 수능 공부와는 조금 결이 다른 '한 가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공부'를 좋아했다.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대학입시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에 이어지는 푸념들과 학교생활을 하는 내내 느낀 열등감과 좌절감은 지금도 나를 옥죄고 있다. 누가 나를 칭찬해주어도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굴욕적일 만큼 손사래를 치는 것도 열등감 때문이다.




친구들과 무리 없이 잘 지내는 인싸가 되지도, 공부를 잘해서 뭇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는 찐 범생이가 되지도 못해서 살아온 날들의 반 이상을 겉돌았다. 똘똘한 동생과 달리 그러지도 못해서 집안에서도 그냥저냥 살고 있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낄 수 없었던 나의 마음이 슬픔과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변했다.


'크리스마스', '명절', '핼러윈'이라는 단어 뒤에는 '축제'라는 말이 어울린다.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 분들께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흥성흥성 들뜬다는 점에서 명절도 축제에 가깝다. 나는 삶의 어느 자리에서도 어울려 춤을 춘 적이 없어서 '축제'를 '축제'로 즐기지 못했다.


몸이 굳어서 춤을 잘 추지 못한다. 음대를 나온 아는 언니는 타고난 발성은 좋지만 소리가 막혀 나오지 않는 것 같다는 소리를 했다. 삶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어느 한쪽에도 끼지 못했기에 삶의 자리자리마다 슬픔과 우울이 맺혀있었고, 그러한 양상이  몸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럼에도 참 다행인 것은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그 슬픔을 좀 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날, 글감이 마구 떠오르는 날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었나' 싶다. 눌러온 것들이 터지기 전에 글로 옮길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


글로 풀어내긴 했지만 브런치에 넣을 사진을 찾느라 본 '무수한 크리스마스 이미지'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아 넘기기는 어렵다. 글쓰기를 그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다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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