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호 Nov 08. 2019

 '화'의 뿌리가 되어버린 간극

간극에 대하여 2.

지난번 동일한 부제로 글을 썼다. '간극에 대하여 1'이라고 했므로 '간극에 대하여 2'가 나와야 할 텐데 다른 글만 썼다. ‘간극은 슬픔을 자아낸다-간극에 대하여 1’(https://brunch.co.kr/@veni0330/30)은 자기 고백 형식의 글이었다. 이번 편도 그런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소재는 잡았으나 쓰지 못한 이유는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글을 썼다가는 읽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의도치 않은 결론을 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마다 만나는 중년 남자분이 다. 그거리에 서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큰 소리로 외친다. '안녕하세요. 예수 믿으세요. 그래야 천국 갑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다기보다 화가 난다. 어깨에 교회 이름이 적힌 띠를 두르고 있으니 아침 인사만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충분할 텐데 '교회에 나와야만 천국 갈 수 있다'니. 아침부터 숙제를 하나 받은 기분이다.

    

그러나 사실 그분을 곱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원인은 나에게 있다. 지나치게 발끈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로 인해 내면의 상처가 건드려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글의 서두부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나도 한때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동기 앞에서 것도 모르는 척 맨송맹송한 얼굴로 앉아 있곤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나도 참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종교는 현실 세계 너머의 가치를 추구한다. 더 높은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속을 끊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인내하고 감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세속은 나쁜 것’이라고 규정짓진 않는다. 그저 더 좋은 가치를 위해 세상의 것들을 후순위에 두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소중한 가치이지만 거대한 신의 사랑 앞에서 인간의 사랑은 뒷순위에 두게 된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에서 알리사가 그랬던 처럼.



어느 누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지금부터 사랑을 할 거야.’라고 다짐을 하고 시작할까. 감정보다 먼저 들어선 죄책감으로 마음이 망가진 이에게 “마음이 생긴 것만으로 이미 서원은 깨진 거다. 나는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기도가 부족한 것이다.”라는 말이 무슨 위로가 될까. 싹이 생기기 전에 단호하게 잘라내려는 심산이었겠지만 이미 마음이 곪을 대로 곪은 이에게는 상처를 후벼 파는 말일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기 이전부터 나는 초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초자아의 지배를 심하게 받는 사람은 규칙 앞에서 바들바들 떨곤 한다. 덕이라는 가치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나 규칙들 앞에 설 때 내 모든 흔적이 죄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질려 있었다. 깨어있는 매일매일이 벅찼고 악몽을 꾸다 깨면 고개가 경직된 체로 들려있었다. 지금도 카페 같은 곳을 가면 지나치게 주변정리를 다. 기왕이면 깨끗하게 먹고 가서 직원이 편하길 바라는 선한 마음이 있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강박감이 들어 과한 행동을 하게 된다.


종교는 좀 더 신성한 가치를 추구하므로 현실에서의 희생 혹은 고난을 요한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는 저 높은 곳과 그저 초자아의 목소리에 벌벌 떨고 있었던 땅바닥의 ‘나’ 사이에는 너무도 먼 간극이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 애를 썼으나 글을 시작할 때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직면한 것은 여전한 간극 앞에서 허덕이는 내 모습이다.


간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처음에는 슬프고 억울하고 두렵기도 했었다. 그런 복잡한 감정이 언제 '화'라는 단순한 감정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 한때 종교를 가졌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한 나는 종교인 행세는 했어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긁으면 긁을수록 더 으르렁 거리는 날 선 사람이 되었다.     


하루 종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습니다. 표현을 고르고 골랐지만 여기까지예요. 글을 쓰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감정이 많이 올라옵니다. 치료를 받을까 생각했지만 아직은 글쓰기의 힘을 믿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이요? 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