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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Mar 16. 2023

"날 화나게 하지 마시오!"

[윤준식 사용설명서(7)] 2023.03.16.

이번 편은 나로선 가장 넘기 힘든 고비가 될만한 내용이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 사람에게 있어 감정에 대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 수록 생각형 인간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차피 더 고민해봐야 답 안나오는거, 일단 답을 써내면서 생각을 보태자"는 식이다. 그런 고로... 윤준식 사용설명서 작성 기간 중 가장 빠른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2주만에 브런치에 돌아왔으니...) 이번 편이 끝나면 최종편이니 여길 넘지 않으면 영원히 완결되지 않는 시리즈가 될 지도 몰라서다.


    *지난 편

         (1편) 지식 https://brunch.co.kr/@ventureman/31

         (2편) 기술 https://brunch.co.kr/@ventureman/32

         (3편) 경험 https://brunch.co.kr/@ventureman/34

         (4편) 성격 https://brunch.co.kr/@ventureman/37

         (5편) 행동특성 https://brunch.co.kr/@ventureman/38

         (6편) 사고특성 https://brunch.co.kr/@ventureman/40



(7편) 감정특성

"나 안 삐졌다니깐?", "거봐 삐진 거 맞지!"


단정부터 하나 하자면, 나로선 어찌해도 감정표현이 서툴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닌데 나와 타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어떻게 감추고 보여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감정표현의 밸브를 잘 조절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꽤 오래 전에 심리상담을 받은 적 있었는데, 당시 심리상담 선생님이 그러셨다. 서툰 내가 나쁜 게 아니라고... 다른 사람과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타인과 나 자신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다보니 남은 내 영역에 편하게 들어오는데, 나는 남도 나와 똑같다 생각하니 남의 영역에 편하게 들어가고자 하지만 경계에 걸리는 거라는 설명이다.


설명 덕에 그간 풀리지 않던 게 풀려서 기뻤지만, 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나의 경계를 무시하고 내 영역에 들어오고 있으며, 심한 사람은 분탕질을 치고 간다. 한편 나 또한 많은 이들에게 다가서지만 늘 경계에 걸려 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경계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이런 삶의 영역 문제는 감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호인(이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호구)인 나지만 나도 누군가 내 경계 안으로 들어와 나의 삶을 어지럽히면 매우 얹짢다. 그러나 울타리가 없어서 경계를 넘어왔을 수 있기 때문에 "울타리는 없지만 여기는 나의 정원입니다"라는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 이게 물리적 공간이면 알려주기 편하고 쉽겠지만, 마음의 영역은 그렇지 않다. 소위 젊잖은 표현, 완곡한 표현을 통해 스스로 알아채게 하고 싶지만 나의 경우 50% 이상 실패한다. 그래도 요즘은 3할이 조금 안 되게 성공하는 편이다.


타인을 관찰해보면, 완곡한 표현으로 경계 설정에 성공하는 확률이 나보다는 훨씬 높아 보인다. 따라서 서로 감정 상하지 않게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는 것을 본다. 훌륭하다. 부럽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네가 더 분탕질을 치면 내 감정이 상한다"는 감정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손해도 보고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에서 '제재'를 가하는 식의 결과를 보여줄 때가 종종 발생한다. 쉽게 설명해 참다참다 '버럭'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적반하장이다. 내가 캔디처럼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버럭'한 게 아니라, 원래 성질이 더러워서 갑자기 '버럭'했다고 여긴다. 이후 논쟁인지 말싸움인지가 벌어지는데, 이 경우 나는 할 말이 엄청 많다. 그간 참아온게 엄청 많다보니 6하원칙에 의거해 조목조목 떠벌일 게 많다. 나는 이 모두가 1절인데, 의외로 같은 노래를 되풀이한다고들 여긴다.


나는 이게 나의 성격특성이고, 남과 다른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성격형성 또한 성장과정과 관련이 없진 않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들을 소급하면 좀 더 특정되려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치다 "너 삐졌지? 안삐졌다는거 보니 삐진거 맞네!" 이런 경험들 있을 거다. 


돌이켜볼 수록 이 문답과정과 결과를 고정관념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위험하고 무섭다는 생각만 든다. 분명 나는 삐지지 않았기에 삐지지 않았다고 답한 것 뿐이다. 다만 상황이 벌어지는 추이를 보건대 나에게 불이익이 올 것 같고,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악화가 올 것 같아 서로 주의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 뿐이다. 하지만 상대는 삐지지 않았다는 나의 대답에 대해, 거꾸러 너는 삐진거라는 말을 던지며 상황의 해결이 아닌 관계의 선제적 단절이라는 감정적 보복수단을 사용한다.


사실 보다 정확하게는 "어? 삐진 건 아니구나. 난 네가 삐졌을까봐. 조심할게"가 정답 아닐까? 정답을 제시해야할 사람이 오답을 내놓고 달아나면서 문제를 낸 사람이 나쁜 것처럼 위장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게 세태가 되어버렸다는 건 상당히 씁슬한 일이다. 어린 시절의 소소한 일들은 귀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서 이런 문제는 계약의 미이행으로까지 가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요즘은 "변호사 비용은 아끼는 게 아니야"라는 말에 1000퍼센트 동의할 정도다.


여러 말이 많았다만, 내가 감정적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내가 성격이 급하고 화를 많이 낸다고 피드백을 해줘서다. 사실 전혀 성격이 급하지 않으며, 화를 많이 내는 사람도 절대 아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보다 동시에 많은 사안을 끌고 가고 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어서 그리 보이는 것 뿐!!!! 믿어지지 않으면 믿지 마시든가.... 여튼 그래서 요즘은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일을 모두 버리고 있고, 인간관계도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입증되는 건 절대 급하지 않다는 거... 오히려 속 터질 정도로 느리다는 거... 화 안내고 유유자적 웃고 떠들고 즐기며 살고 있다는 거... 그러나 속 터지게 만드는 몇몇에 대해서는 작정하고 하나씩 끊어내고 있다는 거...


갑자기 꼬꼬마 시절 미드 시리즈의 고전 <헐크>의 대사가 기억난다. "나를 화나게 하지 마시오!"

그럼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에 최종편 '자질'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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