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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y 13. 2024

요가복을 팔고 아몬드 우유를 받았다


 며칠 전, 중고거래로 요가복을 팔고 구매자로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아몬드 우유를 건네받았다. 나와는 두 번째로 거래하는 분이었는데, 내가 올린 물건들이 저렴하고 상태가 좋았다며 흐뭇해했다. 구입해 놓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거의 사용감 없이 - 그럴 수밖에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 가지고 있다가 중고거래로 팔았던 물건들을 세어보니, 4년 간 대략 이십여 개에 이르고, 거래한 가격은 적게는 몇 천 원, 많게는 십만 원 중반대까지 팔아 보았다. 


물건으로써의 기능적 가치는 있지만, 나에게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새 주인들을 만나 집에서 조금씩 자리를 비워 주었다. 회사 다닐 때 구입했던 무릎길이의 검은색 겨울 코트, 짙은 카키색 사파리, 요가복, 아마존 직구로 샀던 6인조 고블렛 잔, 흥미 없어하는 고양이들 장난감, 사료 샘플, 베스트셀러 책, 면세점에서 구입했던 귀걸이 등 꽤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팔아치웠다. 


팔릴 것 같지 않던 물건들도 가격만 내리면 물건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고, 한쪽에서 무리하게 가격을 깎거나 비매너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거래는 어렵지 않게 성사되었다. 중고거래로 많은 물건들을 팔아 본 지인의 말에 의하면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당일 날 약속 장소에 와서 물건을 확인하고 거래를 끝내고 가서는 다시 연락해서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다짜고짜 입어보고 사겠다는 사람, 약속 시간 한 시간 전부터 연락두절 되는 사람, 처음부터 올려놓은 가격의 반을 깎아달라고 하는 경우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중고거래 초기 때는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었지만, 차츰 거래 경력이 쌓이고 진화를 거듭해 파는 사람도 막무가내식 구매자들을 걸러 낼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봤자 '차단'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긴 하지만 사전에 이런 문제를 일으킬만한 구매자들을 거름으로써 거래 후까지 이어질 스트레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구매자의 집주소를 잘못 적어 보내는 바람에 물건이 한 블록 다른 집으로 배송되는 일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택배를 접수한 뒤 구매자에게 운송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었지만 구매자도 내가 주소를 잘못 적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운송장 번호만 확인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운송장 번호를 확인 한 구매자는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나에게 다시 연락을 했지만 물건은 이미 잘못된 주소로 배송된 후였다. 하필이면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당일 여행을 하던 중이어서 직접 가볼 수가 없었기에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구매자 분이 잘못 배송된 주소지로 직접 찾아가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물건은 찾지 못하고(아주 오래된 주택이었는데 출입문이 일반적인 대문이 아니라 나무로 된 작고 낡은 문이라 찾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되돌아갔다. 여러 번의 문자와 전화로 택배 기사님과의 연락을 이어가다 결국 나흘 만에 구매자에게 물건이 전달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택배 기사님에게 너무 죄송하긴 했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정말 신뢰도 잃고 물건도 잃을뻔한 일이었다. 지금껏 나의 중고거래 케이스 중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구매자 분도 다행히 언짢아하지 않고 차분히 잘 기다려 주었고, 무엇보다 이 일의 해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신 택배 기사님의 수고가 가장 빛났다. 두 분에게는 커피 쿠폰으로 감사를 전했지만 마음으로는 더 큰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구매자 분이 물건을 받았다는 것을 채팅으로 알려오자 며칠 간 불편하고 신경쓰였던 마음이 그제서야 안도감을 허락받게 되었다.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물론 들었지만, 내가 운이 좋은건지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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