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블럭스 숨바꼭질 큐브'를 만든 후에 보다 큰 공간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이가 상자 속에 들어가는 걸 너무 좋아했다.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인 것처럼 아기자기한 물건을 숨겨두고 본인도 들어가서 함께 숨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특히 다락방에 대한 로망이 컸다. 아이를 키워보니 대개가 품는 마음이란 걸 알았다. 자궁처럼 좁고 어둑하고 사적인 곳을 찾는 본능인가. 2층 침대도 어린아이의 또 다른 로망 리스트 중 하나일 거다. 아이가 유치원 절친 방에 놓인 2층 침대를 사진으로 봤다. 본인도 갖고 싶다는 말에 저건 2층 '침대'가 아니라 2층 '집'이라고 재빠르게 얼버무렸다. 마치 복층 구조의 집에 설치된 다락 침실인 것처럼 엄마 사람 특유의 처세술을 부렸다. 내 말을 그대로 믿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보이면서, 동시에 아이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새로운 상자 놀이 주제를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 언젠가 우리 집에 사과 상자를 이어서 만든 잠수함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3살 위 오빠가 만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포장이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사 때마다 가게를 돌며 남는 상자를 구해야 했다. 이사를 자주 다녔던 우리 집은 다음 이사를 위해 상자를 보관했었다. 그중 몇 개를 빼서 만든 잠수함이었을 거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떡하니 차지한 잠수함 안에는 나름 망원경도 설치돼 있었다. 오빠와 나는 상자 속을 포복 자세로 기어 들어가서 ㄱ자로 구부러진 장난감 망원경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예의 주시하곤 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집에 손님이 오신 적이 있다. 손님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와 거실 소파에 앉기까지, 오빠와 나는 망원경 방향을 돌려가며 그분을 감시했다. 손님이 보기엔 우스웠을 거다. 웬 상자 밖으로 튀어나온 눈이 성가시게 쫓아다니나 했을 테니 말이다. 퍼뜩 상자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해야 할 애들이 그런 모양새로 있었으니, 엄마는 우리 엉덩짝에 스매싱을 날리고 싶었을 거다. 지금까지도 뜬금없이 잠수함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풉, 웃음소리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데, 아이에게도 그런 추억의 상자가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그림책 『키오스크(The Kiosk)』를 읽어주던 중, 우리도 키오스크(가판대)를 만들까, 물었다. 아이가 좋다는 대답을 끝내기가 무섭게 거기서 어떤 물건을 팔 건지 신나게 설명했다. 우리 집 키오스크는 말 그대로 판매대이면서 동시에 아이만의 실험 공간으로 구성하겠다는 콘셉트를 잡았다. 공간 이름은 '키오스크 랩(The Kiosk Lab.)'이었다.
모아둔 상자 9개를 거실 바닥에 펼쳤다. 사과 상자보다 1.5배 큰 크기의 것들이었다. 가로에 상자 3개, 세로에 상자 3개를 두고 각각의 한쪽 날개면이 다음 상자의 것에 포개지도록 붙였다. 이전에는 상자를 어떻게 붙여야 할지 우왕좌왕하느라 꽤 긴 시간을 소비했었다. 몇 번 해본 뒤로 요령이 생겨서 작업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 포개진 상자면이 잘 붙도록 그 위에 무거운 물건을 괘 놓고 하루 이틀 정도 기다렸다.
단단하게 붙은 상자를 세워 봤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병풍 같았다. 잽싸게 달려온 아이가 상자를 반원 모양으로 둥글게 둘러쳐놓고 다시 어디론가 가버렸다. 잠시 뒤 아이가 간식이며 잡다한 장난감을 한 아름 안고 와 시장 놀이용 가판대를 꾸몄다. 그렇게 세워진 상자가 한 달 넘게 서 있었다. 시장 놀이를 향한 열정이 식을 줄 몰랐다. 상자만 세워둬도 저렇게 신날까. 나도 괜히 신났다. 내가 상자를 풀로 이어 붙였다고 좋아해 줄 사람은 아이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병풍 상자가 큐브처럼 숨바꼭질 장소로도 쓰였다. 아이의 아빠가 퇴근해서 현관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나 찾아봐,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났다. 남편과 나는 같은 장소에 물건을 사러 가기도 하고 숨은 아이를 찾으러 가기도 했다.
거실 창쪽에 부스를 세워 둔 한 달 동안 햇빛 반, 상자 그늘 반으로 지냈다. 일조량이 부족해서 체내에 비타민D가 덜 생성되는 건 아닐까 착각하며 지냈다. 매번 작업 규모를 키우는 나 자신을 말릴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이제는 진짜 계획한 걸 만들 때라고 설득하고 상자를 눕혔다. 겉면을 칠할 준비에 돌입했다.
거실에 들어찬 상자는 일종의 캔버스였다. 그 위에 테이핑 아트(taping art)를 해보기로 했다. 너비 5cm쯤 되는 넓은 마스킹 테이프를 여러 방향으로 붙여서 화면을 구성했다. 테이핑 된 상자 표면에 물감 묻힌 롤러를 문질렀다. 마지막으로 테이프를 떼면 가려졌던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 색이 덮여 있었다. 아이에게 선, 면, 색을 감각적으로 구성하는 눈을 키워줄 수 있는 활동이었다.
아이가 상자를 돗자리 삼아 앉아서 자기 주변만 이리저리 문질러 댔다. 본인이 칠하고 싶은 부분만 칠해버리고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아이 혼자 칠하기엔 너무 큰 스케일이긴 했다. 엄마의 거창한 계획은 현실 육아 앞에서 쭈글이가 되곤 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창작소 분위기가 좋았는지 만들기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만들기 목록을 들이밀곤 했다.
아이가 단 한 획만 긋고 말지라도, 난 작품 속에 그 붓터치를 남기고 싶어 애썼다. 나는 어린아이의 본능적인 터치가 늘 부러웠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는 피카소의 말처럼 말이다. 나는 당연히 라파엘로처럼 그리지도 못하지만, 아이처럼은 더더욱 어림도 없었다.
페인팅된 상자를 세워서 키오스크 공간이 되게 모양을 고정시켰다. 겉면의 러프한 칠 위에 동적인 재미를 가미하고 싶었다. 모아둔 키친타월심과 휴지심을 모조리 꺼내서 긴 길이 되게 이었다. 키오스크 왼쪽 옆면에서 시작해 오른쪽 옆면으로 통하는 길 하나, 반대로 오른쪽 옆면에서 왼쪽 옆면으로 가는 길 또 하나를 만들었다. 키오스크 안에서 손 내밀어 자동차를 굴리면 반대편으로 내려와서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양쪽에서 동시에 굴리기도 했다. 굴려보고 싶은 건 아무거나 다 굴렸다.
시장 놀이용 병풍에서 키오스크 랩으로 탈바꿈된 부스가 거실 창 앞에 자리를 잡자 아이가 제 방을 두고 그 안에 살림을 차렸다. 실제 방보다 키오스크 안팎에서 노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개인만의 아지트가 주는 설렘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맘때의 잠수함을 거실에 되살려 놓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