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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박스 Oct 23. 2022

사적인 예술 언어 사전

새우[새우]

1. 무섭다

2. 얕보면 안 되다


'새우'라고 쓰고, '무섭다', '얕보면 안 되다'라고 해석하면 된다.


갓 잡은 대하 한 상자가 집에 도착했다. 스티로폼 박스를 열어보니 아직 새우 다리들이 꼼질대고 있었다.


자, 새우 관찰 드로잉을 해보자.


택배 상자로 매번 큰 규모의 작업을 하는 게 아이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상자 작업 중간중간에 간단하고 기초적인 평면 작업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였다. 때마침 새우가 잘 와줬다.


흰 종이를 식탁 위에 펼쳤다. 납작한 접시에 새우 서너 마리를 꺼내 두었다. 살아있는 새우를 본 아이가 신났다. 아이와 함께 새우 머리, 더듬이, 마디가 나눠진 껍질, 그 밑에 무수히 달린 다리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드로잉 시간을 가졌다. 흥이 난 아이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삽입됐던 연주곡에 '새우' 가사를 넣어서 새우 새우 새-우,를 연신 불렀다.



아이가 본래 물속에 살았던 새우를 위해 물을 좀 담아주자고 했다. 우리 딴에는 새우를 위한답시고 잔잔하게 물을 부어 주었다. 그게 문제였다. 물 만난 새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발차기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등을 폈다 구부리는 자세, 그럴 때마다 수많은 다리들 사이로 갈기는 물줄기. 물 튀기는 범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주방 바닥 전체와 싱크대 위까지 이르렀다. 새우가 한번 움찔할 때마다 우리 둘은 으악!, 으악!, 식탁 뒤로 물러섰다가 냉장고 옆으로 도망쳤다.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급기야 세탁실 문 앞으로 피신한 아이가 체통을 지키려 애쓰며 괜찮은 척 한 마디를 꺼냈다.


얌전한 줄 알았는데, 못 키우겠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눈동자는 경직돼 있었다. 무서웠나 보다. 아주 놀랐고, 무서웠다는 의미였다. 한창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매일같이 이 동물, 저 동물을 키우자고 조르던 아이였다. 난 너무 웃기면서도 발버둥 치는 새우를 어떻게 진정시킬까 고민해야 했다.


아이는 그날 새우를 관찰한 그림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우리 집에 새우 소동이 일어났다.


아이가 정신없는 마음을 가리 앉히고 쓴 진심 어린 글귀였다. 새우 참사의 흔적은 드로잉 한 종이에 그대로 남았다. 물이 너무 튀겨서 있는 데로 쭈글쭈글해졌고, 뒷장에 한 두 방울 묻어 있던 빨간 잉크가 새우를 익힌 색깔처럼 번졌다. 새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핏방울까지 떨어뜨린 것 같았다. 불쌍한 새우, 미안해.


그날 저녁 친할아버지를 만난 아이가 말했다.


새우를 얕보면 안 돼요.



아이의 말은 평범한 일상의 허를 찌른다. 나는 예술적인 아이의 말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곤 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말을 수집하는 것은 내게 또 하나의 예술 활동이었다.

 

아이가 4~5살 때 한창 쏟아냈던 질문들과 호기심 가득했던 말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아이가 만두를 구워 먹고 싶어 한 날이었다. 나는 냉동칸에서 만두 봉지를 꺼냈다.


돼지가 준 거야?


아이의 물음에 나는 웬 돼지인가 싶었다가 봉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서야 알았다. 봉지 왼쪽 하단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 돼지가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돼지고기로 만든 만두라는 뜻이었다.


당시 아이가 강아지풀을 너무 사랑했었다. 동네 화단에 강아지풀이 참 많았다. 풀에 복슬복슬한 털이 달린 걸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이름을 묻기에 '강아지풀'이라고 알려줬다. 매일같이 강아지풀을 집에 가져가겠다며 하나, 둘 꺾어서 바지 주머니에 챙겨 왔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근데 강아지는 어딨어?


강아지풀 안에서 강아지를 찾다가 못 찾아서 한 질문이었다.


하루는 아이와 수박 얘기를 하다가 수박에는 줄무늬가 있지?, 하고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은 적이 있다. 아이가 답했다.  


응, 맞아. 호랑이처럼.


또 한 번은 복숭아를 먹자고 한 날이었다. 아이가 싱크대 위에 올려진 복숭아를 손으로 쓸어보더니,


털이 있어, 아저씨처럼.


양치질을 할 시간이었다. 아이에게 치카치카하자고 했더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 했다. 평소에 얘기해주길, 양치질은 충치 벌레를 잡는 일이고 충치 벌레를 잡지 않으면 너무 아파서 치과에 가게 된다고 했었다.   


근데 벌레(충치) 옷이 젖으면 어떡해?


벌레 옷이 젖을까 봐 양치를 못하겠다는 고단수 수법을 들이밀었다.


두세 살 더 먹은 지금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귀여운 입술을 오물조물 거리며 내 예술 언어 사전 안에 써넣을 말들을 불쑥 던져준다.


얼마 전에 영어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더니 이랬다.


에브리바디! 쉐잌 유어 바디!(Everybody! Shake your body!)


영알못은 애니메이션으로 영어를 배울 때 'A is an apple'부터 배우지 않았다. 제대로 된 현지 영어를 배우려면 셰이크 유어 바디부터 배우는 거였다.


아이에게서 들은 잊지 못할 말이 또 하나 있다. 아이와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가 차창 너머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면서 내게 물었다.


해가 산으로 넘어가면 산에 아침이 와?


나는 웃었다. 해가 넘어가면 다른 나라로 간다고 대답해줬다. 녀석은 아하, 하며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추임새를 넣었다. 2초 정도 여백을 두고 아이가 또다시 물었다.


그래도 해가 산으로 넘어가면 산 뒤에는 잠깐 아침이 오는 거 아니야?


그때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아침이 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생의 해가 다 진 것 같은 암담한 때에, 내게서 해가 달아난 것 같은 때에, 절대로 해가 비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 김 빠진다. 지나가던 해가 잠깐이라도 비칠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의 말은 예술적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게 예술의 역할이니까. 아이의 단어와 문장이 곧 예술이고, 그 말이 작업에 스며들 때 작품이 더욱 풍성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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