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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박스 Oct 23. 2022

공룡이 끼어든 날

6,600만 년 전에 멸종했다는 공룡에 관해 나의 전 생애 어느 시기에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길 가다 만난 꼬마가 으월ㄹㄹㄹ~(이 소리만큼은 영어 발음이 더 리얼한 것 같다. roarrr~)!!!, 공룡계의 갑이 된 척 으름장을 놔도 재미가 1도 없어서 대꾸조차 하지 않았었다. 남자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날, 나의 지난날에 콧웃음 치기라도 하듯 내 앞에 공룡이 끼어들었다.


아이가 네댓 살 때쯤이었다. 하루는 자동차 뒷좌석에 아이를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우회전을 하고 나니 어디선가 나타난 트럭이 내 차보다 앞서 가게 됐다. 지붕 없는 대형 트럭이었다. 거기에 높이 2m 이상은 돼 보이는 디테일이 정교한 공룡이 트럭 뒤쪽을 보고 서서 입 벌린 채 끈에 묶여 가고 있었다. 근처에는 개장을 앞둔 대형 몰이 있었다. 쇼핑 몰에 입점한 장난감 상점에 설치될 녀석으로 보였다. 트럭과 우리 차는 어린이 보호 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속도를 늦춘 트럭에 맞춰 내 속도도 늦췄다. 방지턱도 많았다. 트럭이 덜컹덜컹 턱을 넘을 때마다 공룡 턱이 더 벌어졌다 덜 벌어졌다 했다. 날 선 이빨을 과시하며 나를 노려보는 그 녀석을 앞에 두고 계속 뒤쫓아 가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곧 잡아먹힐 신세였다. 아이는 오, 오, 하며 아주 좋아했다. 버스에 설치된 TV에서 자주 틀어주는 외국식 길거리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을 신경이나 썼을까 싶었다. 전혀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거다.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신이 이런 상황을 연출이나 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와 사는 세계 속에는 느닷없이 환상이 펼쳐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환상 체험이 곳곳에서 이뤄졌으니 말이다.


동물원에 간 어느 날이었다. 본래 우리는 아쿠아리움에 방문할 계획이었다. 실제 들른 곳도 아쿠아리움이었는데, 2층에는 '맹수관'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어쩐지 이상했다. 방문 전에 핸드폰으로 해당 아쿠아리움 페이지에 접속하니 호랑이 사진이 먼저 나왔었다. 잘못 봤나, 웹 관리 담당자가 실수했나 생각했다. 실수가 아니었다. 2층에는 레알 맹수관이 있었다. 건물 안에 맹수라니, 사무실 안에 사자가 어슬렁거리는 광경인가. 소설 『파이 이야기』처럼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인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지, 공포였다. 맹수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도 마련돼 있었다. 쇠꼬챙이에 생닭 한 마리가 통째로 꽂혀 있었다. 이 상황이 현실이란 말인가. 현실 세계의 깊이와 너비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목숨에 지장 없이 장내를 무사히 둘러본 뒤 출구로 향했다. 이제 가자, 하고 문을 열었는데 야외에 새장이 설치돼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놓이는 작고 아기자기한 새장을 생각하면 안 된다.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들도 들어간 장이었다. 그때 한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으악, 비명을 지르며 경악했다. 타조가 부리를 사용해서 맹렬하게 철조망을 물어뜯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엮인 철조망의 한쪽은 이미 뜯겼고, 다른 한쪽은 뜯기는 중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조류의 몸부림은 맹수의 것 이상이었다. 타조 머리가 얼마나 작은 지 모두 알 거다. 물고 있는 철조망 한 줄만 끊으면 그 사이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머리가 밖으로 탈출할 때 긴 목이 쭈욱 나오면 내 얼굴은 타조 얼굴과 완전히 맞닿을 수 있었다. 나는 타조와 이마를 맞대고 교감할 만큼 그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타조가 바바파파처럼 몸 모양을 바꿔서 철조망 사이로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그는 달리기 선수 아닌가. 그가 나를 향해 돌진하면... 아이를 만나고 난 뒤 상상력이 늘었는지, 너무 앞선 몽상으로 인해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역시 아이와 방문하는 곳곳엔 예기치 못한 환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이의 방문을 예견이라도 한 듯.


미술 작품으로 공룡을 만들고, 동물원에 구경 가는 일은 나답지 않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환상 속에 살기 시작하자 이런 일들이 의미 있어졌다. 아이가 세상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이곳에는 환상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을 알아볼 눈과 귀와 입이 트인 것은 아이가 온 이후부터였다.


상상하지 않으면 예술하지 못하고, 환상을 품지 않으면 예술을 품을 수 없다. 환상은 예술의 주요한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막 예술을 배워가고 있다. 아이가 존재하고 나서야 환상적인 세상을 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예술적인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more truly artistic than to love people)'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이 아이의 얼굴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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