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거인 로봇'을 SNS에 올렸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 중에 '뒤뷔페전'이란 이름이 눈에 띄었다. 뒤뷔페전? 살짝 아재 개그 같지만, 전 씨 성을 가진 뒤뷔페 팬의 계정인 줄 알았다. 크헉.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장 뒤뷔페 전시 홍보 페이지였다. 주최 측에서 눌러준 하트 덕분에 전시가 열릴 예정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작가인데, 아이와 만들기를 하자마자 실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니! 정말 굿이었다.
얼리버드 티켓을 들고 간 전시는 흥미로웠다. 뒤뷔페 작품만 모아둔 전시를 보러 간 건 나도 처음이었다. 마지막 구역까지 잘 관람하고 나가려는데, 멀쩡했던 아이가 갑자기 흥, 흥, 거리며 삐쳤다. 그곳에는 작가 작품을 어린이용 옷으로 제작해 놓은 것이 있었다. 어떤 아이들이 그걸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입어봐도 되는지 물었더니 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어린이 미술 교실 수강생만 입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옆을 보니 삼삼오오 모인 유아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입술을 오리만큼 내밀고 기분 상한 티를 팍팍 냈다.
마무리가 삐거덕 거리는 바람에 아이의 머리에 작품이 남았을지 오리 입이 남았을지 잘 모르겠다. 역시 아이와 관람하는 전시는 우아하기만 하면 심심하다. 정신없는 틈새에도 내 머릿속에 자꾸만 몽글 대는 뒤뷔페의 말이 있었다.
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절대적으로 원시적이며 빵을 갈망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이다. 빵이 없다면 굶어 죽겠지만 예술 없이는 지루해 죽는다. - 장 뒤뷔페(Jean Dubuffet)
예술이란 존재 그 자체이자, 존재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이란 말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의 예술 욕구란 뒤뷔페의 말처럼 강렬한 것이다. 강렬한 몸부림이다 못해 정말 인간의 손으로 빚은 것인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술 작품 앞에서 육체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체험이 그걸 말해준 적이 있다.
이곳이 지옥인가 천국인가, 실재인가 허구인가, 현실인가 공상인가, 도대체 이 공간과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전율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201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의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Basilica of Sagrada Familia, 성 가족 성당)' 앞에 서 있었다. 나의 짧은 언어 세계로는 성당의 모습을 묘사할 수도, 그것을 마주한 감정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예술 작품에 압도된다'는 말은 바로 그런 때 쓰는 표현일 거다. 굳이 구체적인 단어 하나를 끄집어내 묘사하자면, '추(醜)의 미'를 들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곳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추(醜) 미가 존재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표출된 조각, 시작과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미로 같은 공간 구성이 나로 하여금 계산 불가한 경외감을 표출하게 한 것일 수 있었다. 신을 숭배하는 장엄함이 그곳에 선 사람을 숨 멎도록 짓눌렀다.
천재의 머릿속은 다가갈 수 없는 환상 그 자체였고, 그가 만든 세계는 짝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상반된 감정들을 동시에 휘몰아 왔다. 천재가 노숙자로 삶을 마감했다는 말에 싸한 슬픔이 피어올랐다. 세상에는 천재의 환상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이가 없었나 보다. 때가 되면 다시 그의 공간 안에 들어서 보고 싶었다. 그때 나는 어쩌면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눈가에 머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 가족 성당 안에서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보던 순간을 떠올렸다. 멈출 수 없는 전율에 휩싸여 온 감각이 요동치던 육체를 여전히 나는 간직하고 있었다.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고 온몸이 바르르 떨리는 경험을 또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아이도 이런 체험을 해보길 바랐다. 넋을 잃게 만드는 예술을 목도하길 바랐다. 아이의 인생에서 단 한 번 경험하게 될 일일지, 열 번을 경험하게 될 일일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을 단번에 알아챌 눈을 가질 수 있길. 우리의 상자 놀이가 그때를 마주하기 위해 오늘 만드는 미세한 자취가 되길 바랐다. 예술이 없으면 삶은 지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