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기획 배우기
인스타그램 채널과 웹사이트라는 기반을 만들었으니 그다음은 쌓을 차례였다.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브랜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루는 콘텐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출판전야라는 숙소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
우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출판전야를 시작했는지 정리해서 게시글로 올렸다. 기획 배경을 알아야 사람들이 뒤에 이어질 흐름도 이해할 테니까.
다음으로는 내가 공간 기획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남기기로 했다. 관련 책을 읽거나 장소를 경험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는 식으로.
책은 실용서보다는 인문서를 많이 읽었다. 공간 기획 이론이나 인테리어, 운영 방식 등은 아직 써먹을 일이 없다 보니 손이 가지 않았다. 처음엔 주로 아래와 같은 책을 읽었다.
건축가/건축주가 공간 관련 생각을 정리한 글
숙소를 지으려면 건축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축가 혹은 건축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건물을 짓는지 살폈다.
[주요 책]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 에이리가족/네임리스건축, 안그라픽스
책방, 서재, 숙소, 작업실의 운영자가 쓴 글
출판전야와 교집합이 있는 장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장소를 가꾸는지 봤다.
[주요 책]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아쿠쓰 다카시, 앨리스
작가가 글쓰기/창작 관련하여 쓴 글
글쓰기를 위한 공간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글을 쓰는지 참고하고자 했다.
[주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카테고리별로 이유를 달긴 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미였다. 지치지 않고 출판전야를 준비하려면 퇴근 후 지친 상태에서도 손이 갈 정도로 흥미로워야 했다.
책 다음은 장소였다. 출판전야에서 참고할 만한 요소가 있는 장소에 찾아갔다. 주로 서점, 작업하기 좋은 카페, 숙소를 방문했다. IT 업계에서 레퍼런스 조사를 하는 것처럼 고객 경험이 어떻게 시작되고 마무리되는지, 재방문으로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폈다.
예약은 어떻게 받는지
방문 당일 찾아가는 길은 어떤지(교통편, 동네 등)
손님맞이는 어떻게 하는지
장소의 기승전결은 어떻게 되는지, 특히 하이라이트는 무엇인지
손님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상은 어떤지
공간이라는 매체에서 단계별로 어떤 장치를 활용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하는 게 즐거웠다. 출판전야에 적용할 만한 부분이 있는지 초점을 맞춰 봐서 더 그랬다.
이렇게 책과 장소를 통해 배운 것들을 정리하여 인스타그램과 웹사이트에 올렸다. 업로드 주기가 잦지는 않았지만 가늘고 긴 형태로 이어졌다.
많은 지인이 계정을 팔로우해 줬다. 팔로우 하나하나가 응원이었다. 업로드에 게을러질 땐 요새는 게시글이 뜸하네라고 말해 주는 지인도 있었다. 그럴 땐 반성하고 글을 올렸다.
한 발 더 나아간 도움을 주시는 분도 있었다. 가 볼만한 곳을 추천해 준 분들. 그분들 덕에 출판전야를 만들 때 참고가 될 만한 다양한 장소를 알게 됐다.
상상헌
이외에도 많은데 하나 같이 출판전야를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어떻게 이렇게 추천을 잘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올린 게시글 덕분이었다.
지인들은 출판전야 계정의 게시글을 보고 내가 어떤 장소를 준비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에 맞춰 추천을 해 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올린 게시글을 열심히 봐준 것도 감사한 일이다.
사람을 소개해 주는 지인도 있었다. 출판전야를 만들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 공간 기획자, 코리빙/코워킹 플레이스 대표, 자기만의 장소를 운영하는 분들을 소개받았다.
그분들을 만나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오프라인 공간 사업은 코로나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오프라인 업계도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사람을 소개해 주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진심이 드러나서가 아닐까. 지인들은 게시글을 보며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게 아니라고 여겨 사람을 소개해 줬을 것이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주위에 선언하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지인들에게 선언하면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출판전야를 준비하며 여기에 한 가지 장점이 더 붙는다는 걸 알게 됐다. 선언을 하면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선언하고 의지를 내비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