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전야의 시작
글쓰기와 관련된 공간을 만들기로 했을 때부터 이미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몰입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는 자취를 하기 전이었다. 집에서 글을 쓰다 보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딴짓을 하거나 어쩔 땐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집이 너무 편안한 탓이었다.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할 때면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 나섰다. 익숙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 적당한 긴장감이 생겨 글이 잘 써졌다.
그런데 다니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었다.
기껏 갔는데 자리가 없거나
주위가 너무 시끄럽거나
충전할 콘센트가 없거나
장시간 작업하기 눈치가 보이거나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하거나
밤늦게까지 머물지 못하거나
이런 걸 걱정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 글쓰기에 특화된 조건이 갖춰지면 더욱더 좋을 것 같았다.
상상력을 다 받아 줄 정도로 널찍한 책상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의자
글을 선명하게 투영해 줄 모니터
연주하듯 글을 쓰게 하는 음악
몰입을 돕는 은은한 조명
글 쓰는 사람에게 이상향이 될 만한 곳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공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분명 가겠지.
하고 싶은 게 대략적으로 정해진 후 공간의 이름을 고민했다. 일단 내가 생각한 공간이 가장 필요한 상황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글쓰기에 몰입해야 될 때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작가에게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 개인적으로는 마감을 앞둔 때라 생각했다.
이때만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야 한다. 생각을 글로 다 옮겼다면 퇴고가 시작된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만의 싸움이 이어진다.
이 고독한 시간에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름의 후보를 정했다.
마감전야(마감前夜)
출판전야(出版前夜)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날 밤이라는 뜻이다. 마감과 출판 중 어떤 걸 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출판으로 했다. 네 글자가 모두 한자인 출판전야가 입에 더 잘 감겼다.
원래 제목을 짓고 글을 쓰는 편이라 공간의 이름을 정하니 본격적으로 시작한 느낌이었다. 내친김에 짧은 소개글도 썼다.
출판전야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긴 밤
그 설레면서도 고된 밤에
출판전야가 함께 합니다.
몰입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곳, 출판전야. 기본적인 방향은 정했지만 고민해야 할 게 많았다. 출판전야는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독이었다. 글쓰기는 홀로 떠나는 여정이다.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기 어렵고 혼자여야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퇴고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어떤 단어, 문장이 좋을지 그동안 내린 수많은 선택을 거두어들이는 시간. 어떤 것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이런 점 때문에 출판전야에는 혼자 찾아와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온다면 자기 자신과 글쓰기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할 테니까.
고독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밤이었다. 출판전야라는 이름에는 밤 야(夜) 자가 있다. 여기서 밤은 글을 마감하기 직전의 시간을 비유한다. 사전적 의미의 밤을 그대로 뜻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출판전야에서 밤 시간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번 글 쓰기에 빠지면 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땐 글이 연주하듯 써지는데 이 흐름이 끊기면 아쉽다.
출판전야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밤늦게까지 머물 수 있길 바랐다. 이를 위해선 가게 문을 일찍 닫아서는 안 됐다.
혼자 찾아와 밤늦은 시간까지 글을 쓸 수 있는 곳. 출판전야는 숙소가 되는 게 맞아 보였다.
일단 고객이 혼자 방문하는 형태라면 한 사람의 객단가가 높아야 한다. 카페보다는 숙소가 객단가가 높았다. 카페와 달리 숙소는 머무는 시간만큼 돈을 내니까.
또 숙소라면 막차 시간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마감에 쫓기는 작가의 조바심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다음 날 일출과 함께 탈고를 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런 이유로 출판전야를 홀로 와서 글 쓰는 숙소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작가들은 몰입해서 글을 쓰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고 들었다. 그럴 때 출판전야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목표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