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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r 09. 2024

매몰 비용

환경 조성하기

시작이 반이다. 이 말을 그간 강하게 믿어 왔다. 그동안엔 어떤 일을 시작만 하면 무리 없이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어떤 앱이나 웹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면 결국엔 완성했다.


이런 자신감이 출판전야를 시작할 때는 자취를 감췄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도착지에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확신이 없었기에 앞길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출판전야를 숙소(스테이)로 만들고 싶어서 더 그랬다. 숙소를 만들려면 준비해야 될 게 많았다.


어디다 숙소를 지어야 하나

서울은 너무 비싸니 근교로 나가야 하나

면허도 없는데 땅은 어떻게 보러 다니지

근데 어떤 땅에 숙소를 지을 수 있지

다 짓는다 해도 숙소 관리는 누가 하지

...


눈 앞의 장벽이 너무 많고 높았다. 집을 지으면 10년을 늙는다는 말이 있던데 역시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금세 지지부진해졌다. 하는 둥 마는 둥. 회사 일에 회의감을 느낄 때 정도만 잠시 들여다보는 정도가 됐다. 그렇게 진전 없이 1년 정도 유야무야 시간을 흘려보냈다.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며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앞을 내다보면 답이 없다. 지금은 당장에 내딛을 수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매몰되어야 한다.


나는 두 가지 행동을 취했다. 첫 번째는 출판전야의 로고를 만드는 것. 두 번째는 오프라인 공간 기획/브랜딩 모임에 나가는 것. 돈만 내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숨고에서 디자이너를 찾아 외주를 맡겼고 30만원을 냈다. 인사이터라는 모임 플랫폼에서 오프라인 공간 관련 모임에 30만원을 내고 등록했다.


돈을 쓰면 아까워서라도 그만 두지 않고 열심히 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경제학에선 이걸 매몰비용의 오류라 하지만 어쩌겠나. 어찌 됐든 사람은 그 오류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난 이 점을 적극 이용하기로 했다.


실제로 매몰되기 위해 쓴 비용의 효과는 좋았다. 진행 속도가 엄청 빨라진 건 아니었지만 바퀴에 녹이 슬지 않을 정도로는 나아가게 됐다.


로고가 만들어진  출판전야 인스타그램 채널을 만들었다. 출판전야를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용도였다. 채널을 만드니 의무감이 생겨서 평소보다 출판전야에 대해 고민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모임에서는 오프라인 공간에 관심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호텔을 관리하는 분, 파티룸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분, 직접 호텔을 만들고자 하는 분까지. 그들 곁에서 공간 기획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동기부여가 됐다.


환경 조성을 하며 한 걸음 내딛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차근차근 가다 보면 언젠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득한 목표 지점을 보는 대신 일단 발밑만 보고 걷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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