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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ewist May 10. 2021

PPL의 노예였지만 효도는 했으니깐...

TV만 키면 나오는 척추온열 의료가전이라는 놈을 고향 집에 넣으며...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 불효자는 지갑을 열어 주위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가족의 달 5월'이 왔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약간의 불안함은 있지만, 노총각도 잘 지낸다는 인사와 깜짝 선물(?)을 하기 위해 사람이 붐비지 않는 주중을 이용해서 고향에 내려갔다. 


지난 3월쯤 부모님과 통화를 진행하다가 허리가 안 좋아 누워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적에도 허리가 좋지 않아 황토 찜질을 계속하시던 부모님이 생각나며, 나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최근 나만 생각했던 것에 대한 약간의 반성이 들었다. 그렇게 저녁에 TV를 켜니 미스트롯에는 안마의자도 아닌 것이 의료기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자꾸 티브이에 나온다. 부모님께 놔드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자꾸 맴도는 게 이게 바로 PPL의 힘이라고 머리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음은 계속 구매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찬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정말 우연찮게 길가에 있는 체험 카페를 만나게 됐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그냥 체험을 한번 해보는 게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어 직진했다. 한 30분 정도 되는 코스였던 것 같은데, 나는 바로 곯아떨어졌고 컨디션은 개운함을 느꼈다. 그 개운함의 느낌이 지속되면서 부모님 생각도 나고, 그 온열기기도 생각나고.... 뭔가 PPL의 노예가 된 느낌이 들었다. 참 광고 잘하는구나. PPL, 체험 카페, 유명인 광고에.. 정말 생각이 나지 않을 때쯤 그분(?)은 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그렇게 부모님께 나아드리기로 결심한다. 모아둔 돈은 없었지만, 어차피 모으지도 못할 것 같아서 근처 전자제품 판매점들을 돌아다니며 알뜰살뜰 알아보고 가장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구매를 진행했다. 만약 내가 쓰는 거였다면, 미루겠지만 나이가 든 부모님이 쓰실 거라고 생각하니, 그리고 언젠가 결혼을 하면 와이프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르니 선택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성의 척추 온열 의료 가전이라는 내 인생에서 전자제품으로는 가장 비싼 돈을 들여 고향 집에 배송을 넣었다.


영화같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내려와 있는 기간 내에 배송이 될 수 있도록 요청했는데 다행히 일자를 맞추어 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가 기차역에서 마중 나온 부모님을 만났는데, 뭐 이렇게 비싼 걸 샀냐는 말을 하시며,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배송 예정 일자와 제품을 미리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사실은 안 한다고 하면 어쩔까를 고민하긴 했는데, 예전부터 너무 사고 싶었는데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사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으셨다.


그렇게 배송 당일에 기기를 만나자마자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즐거워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뭔가의 짠함을 느꼈다. 늙지 않을 것 같은 부모님은 어느덧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 버렸고, 허리도 굽고, 몸도 야위워가는 모습에 뭔가 울적해졌다. 지금이라도 사실 수 있으신데 아직도 아끼시는 모습에 뭔가 더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진작 놔드릴 걸 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냥 젊을 것 같은 나 자신도 거울을 보니 참 많이 늙은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PPL의 노예였지만, 그래도 노총각이라 가능했던 효도 FLEX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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