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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아름다워

삶과 삶을 잇는 글

by 타조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군가는 가슴 벅찬 행복과 기쁨에, 또 다른 누군가는 절망과 비탄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삶의 행간 사이에 불규칙적으로 불쑥 솟구치거나 움푹 가라앉으며 우리의 인생을 행복에서 불행으로 흐르게 하고 또는 절망에서 환희로 바꾸기도 한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과 끝없이 비교하며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행복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낙담하며 괴로워한다. 질투와 시기에 휩싸여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행복을 구걸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디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고, 불행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우리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의 에너지가 흐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행복을 함께 응원하고, 누군가의 고난을 안쓰러워하고, 누군가의 슬픔에 위로를 건네고 싶어 가슴이 메인다. 문학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기록되고 읽힌다. 특히 시는 절제된 언어로 우리에게 감동을 안긴다. 박완서의 말처럼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 한 편이 삶을 위로하고, 정신을 가다듬게 하고, 퇴색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힘들고 지칠 때, 무심코 뻗은 손으로 펼친 시집의 시 한 구절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흐르고 위로받는다. 시에 다정하게 녹아 있는 사랑이 우리에게 위안을 건네고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준다.


우리의 삶이 건조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지식으로 행하는 친절과 예절 때문이 아닐까? 가슴에 간직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성공과 성과 위주의 삶을 강요당하며,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일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때문은 아닐까 싶다.


박완서의 글을 읽으면 마음씨 좋은 할머니의 푸근한 정이 느껴진다. 지극히 평범할 것 같은 일상 속에 따뜻한 사랑이 흐른다. 따뜻한 사랑을 속삭이는 문학의 감동에 빠지고 싶어 오늘도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찾아 시집을 뒤적인다. 우리의 사랑이 주위에 온기를 더하고 서로의 삶이 따뜻하게 맞닿는 곳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갈 것이다.


박완서.jpg

<박완서, 193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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