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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내 정신 좀 봐

2화. 좀 전에 치웠잖아!

by 챗언니




좀 전에 치웠잖아.


이 말,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좀 전에 치운 것 같은데, 왜, 또.

식탁의 빈 자리가 보고 싶다. 비어 있는 식탁 위에 꽃병을 놓고 계절마다 그에 어울리는 꽃을 꽂아두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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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와는 멀리 떨어진 이야기다.

나에게도 그런 로망이 있었다.


반질한 원목 바닥, 벽에 걸린 내 취향의 액자, 린넨 앞치마를 두르고 예쁜 접시를 내놓는 저녁 식탁.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주황빛 조명 아래 은은한 캔들 향이 퍼지는 그런 집.


하지만 현실의 내 집에는 늘 무언가 굴러다닌다. 만들고 남은 종이 찌꺼기, 과자 부스러기, 색연필, 택배 상자…. 나는 늘 그 사이를 오가며 투덜투덜.


아까 치웠잖아!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고, 서툰 일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안일에는 그게 허락되지 않는다. 모든 주부가 집안일을 잘할 수는 없는데, 세상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언젠가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결혼 전에 자기 책상 위에 허물 벗듯 쌓여 있던 옷들을 보고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제와 후회해도 무를 순 없다. 지금도 나는 옷을 허물 벗듯 벗어놓는다. 다음 계절이 와도 그대로일 때도 있다.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예쁜 걸 좋아하지만, 깔끔하게 사는 건 어렵다. 집에는 해야 할 청소가 너무 많다. 바닥, 욕실, 창문, 세탁기, 냉장고, 심지어 마당 낙엽까지. 안 하면 티 나고, 해도 티 안 나는 일들. 집안일은 억울한 일 투성이다..


내가 집안일에 서툰 이유는 간단하다.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ADHD는 즉각적인 보상에 민감하다고 한다. “이거 하면 초콜릿 줄게” 같은 달콤한 보상이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된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이 듣고 싶다. “우와, 텀블러를 닦으셨군요!” 그 한마디면 기운이 날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런 말은 아무도 안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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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았다. 이게 다 뇌 탓이란다. 어디서 읽었는데, 사람마다 ‘해야지’와 ‘하기 싫어’를 연결하는 회로가 다른데.(전문용어로 ‘전전두엽’이라고 하는) 이 회로가 조금 느리면, 머리는 알고 있어도 몸이 안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그게 느린 쪽인가 보다. “해야지” 하면서도 손이 안 가는 건, 의지 부족이 아니라 피로 누적일 수도 있다는 거다. 체력이 약하면 쉽게 피로하듯, 집중력도 마찬가지인 것. 그걸 알고 나니, 조금은 덜 자책하게 되었다. 누가 보면 변명 같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나를 이해해줘야지.



나는 게으른 게 아니었구나. 뇌의 어딘가가 약해서 그랬던 거구나.



요즘 주부들, 다 바쁘다. 일하고, 아이 보고, 집안일까지. 남편의 가사 분담이 늘었다지만, ‘청소’만큼은 여전히 여성 몫인 집이 많다. 뉴스에서 봤다. 한국 남편들 하루 평균 집안일 20분, 여성은 2시간 30분. 그리고 그 20분은 꼭 여성이 같이 있을 때다. 물론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도와주는 것’‘책임지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여성 쪽이 더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많은 주부들이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도와주긴 하는데, 결국 신경 쓰는 건 나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까지 합치면, 집안일은 단순한 노동 그 이상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청소기 대신 노트북을 열었다. 집은 깔끔하지 않아도, 마음은 조금 정리됐다. 설거지는 내일 해도 될 것 같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박수 받을 일들.

1️⃣아이가 어질러 논 식탁 위를 보며 짜증내지 않았다.
2️⃣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기 싫은데도 결국 했다.
3️⃣아이 물병을 뽀득하게 닦았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
오늘 내가 해낸 사소한 일 한가지만 떠올려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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