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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Oct 02. 2023

꼼수를 좀 부렸습니다.

책은 그저 거둘 뿐.

  독서는 우리 큰 아이 성향에 맞았는지 혼자 놀 때면 책을 꺼내 놀았다. 문제는 항상 어미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너무 힘들어 누워서 쉬고 있을 때도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야만 했다. 아이는 책에 대한 사랑이 커져갔고 난 그 반대가 되었다. 책육아고 뭐고 '엄마'라는 역할에 지쳐버리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씻고 먹이고 재우는 최소한의 육아만 하기를 며칠. 마음이 불안해졌다. 엄마로서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죄책감이 스멀스멀 커져갈 때 다시 '책육아'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좀 설렁설렁하기로 했다. 에너지 모두를 아이에게 쏟기보다는 머리를 굴려 나도 아이도 윈윈 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방법으로!


폰을 보고 싶을 때


  '애들 앞에서 찬물도 못 마신다.'란 말이 있듯이 아이는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24시간 함께 있다 보니 아이의 모방 학습 관찰 대상자는 자연스럽게 엄마가 된다.

(모방학습 :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학습.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책육아를 시작 한 뒤에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평소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 보는 시간도 줄였다. 하지만 틈나는 대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니 아주 짧은 자유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힐링 창구였던 책이 그 당시에는 맛없고 지긋지긋한 닭가슴살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잔머리를 굴렸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가 자기만의 놀이에 심취해 엄마를 찾지 않을 때면 식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손에 폰을 쥐었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과서를 방패 삼아 소설이나 만화책을 읽었던 적이 종종 있다. 그때처럼 책을 가림막처럼 펼치거나 세우고 핸드폰으로 블로그를 검색하거나 쇼핑이나 연예 기사 등을 읽었다. (책의 위치는 아이와의 거리 및 각도에 따라 달라졌다. 아이에게 딴짓하는 것을 걸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잡지책을 읽었다. 소파에 엎드린 채 잡지를 읽고 있으면 아이는 놀다가 나에게 와서 함께 소파에 뒹굴거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함께.


첫째는 책을 많이 좋아해서 꼼수를 부렸다면 둘째는 책을 좋아하지 않아 머리를 굴려야 했다. 둘째는 책을 놀이 도구로 이용했다.

책 속 인물을 이용한 미술 놀이


책 병원 놀이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던 둘째. 책장을 넘기려는 엄마와 넘기지 않으려는 아이의 손이 엇갈려 종종 책이 찢어졌다. 망가진 책이 몇 권 모아지면 가위와 스카치테이프를 준비해 '책 병원'을 열었다. 가위로 테이프를 잘라주면 큰 아이는 찢어진 곳에 붙이고 둘째는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시늉을 하는 병원 놀이로 변신한다. 청진기 등의 장난감이 있다면 책은 좀 더 완벽한 환자로 변한다. (책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돗자리


   새책 냄새가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말과 아이는 책을 잘 망가트린다는 선배맘의 조언에 따라 대부분의 책은 중고로 구매했다. 그렇기에 책을 이용해 노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소풍놀이를 할 때마다 책을 돗자리 대신 거실 바닥에 늘어놓았다. 책 위에 앉아 식당놀이도 하고 인형 낮잠을 재우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에 들거나 궁금한 책 표지가 눈에 띄면 아이들은 책을 펼쳐보았다. 굳이 무엇을 읽어보자고 권유할 필요는 없다. 읽지 않아도 책 표지 보고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 울타리 만들기

  

  책 돗자리만큼이나 자주 만들었던 책 울타리. 여러 권의 책을 펼쳐 아이들 둘이 누울 만큼의 크기로 울타리를 만든다. 중간에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거나 책을 다른 방향으로 세워 문으로 만든다. 아이들은 책 울타리 안에  엎드려 누워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 놀이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책 속 그림을 언제든 볼 수 있었다. 책 울타리는 만들기도 쉬웠고 효과도 좋았다. 나중에는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먼저 만들었다.


바다 속 상상해서 그림 그리기


모든 놀이에 슬쩍 끼어넣기


  두 아이 모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는 색종이, 색연필뿐 아니라 다양한 사이즈의 종이를 준비해 두었다. 주말에는 커다란 전지를 꺼내 모녀가 협동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할 때 내가 하는 일은 관련된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책을 찾아주는 것이다. 동물 그림을 그릴 때면 자연 관찰 책을 찾아줬다. 아이들은 책 속 사진이나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도 궁금한 점이 생기면 나에게 질문하며 책을 넘겼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시간으로 연결되었다.


바닷속 모습을 그릴 때 물고기만 그리는 바다 생물 책을 슬며시 꺼내주면 "아, 이것도 있었지?" 하면서  아이들은 해마, 거북이, 불가사리 등을 종이 위에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책을 읽어주거나 시디로 책 음원을 들려주었다. 눈과 손은 그림에 집중하면서 아이들의 귀는 책 이야기로 열려있도록.


아이들 놀이에 책을 도구로 활용한 후로는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읽다가 힘들면 멈추고 놀이로 전환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둘째도 놀이로 책을 받아들이니 거부감이 덜했다. 그렇게 방법을 찾았던 책육아는 우리 집에 잘 정착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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