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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티지 그라시아 Jun 10. 2022

시어머님의 사랑이 되어버린 스꾸(스티커 꾸미기)

성찰의 도구, 다이어리 꾸미기


 미국으로 오게 되니 양가 부모님들은 한국 물건을 그리워하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 한국 물건들을  택배로  보내주시는 수고를 해주신다.  양말, 과자, 라면, 책, 노트, 속옷,  건어물 심지어는 말린 나물이며 밑반찬까지도 말이다.


 지난번 한국의 마스크 파동 때도 시부모님께서는 한국보다 이곳 미국이 더 심하다면서 매일매일 줄 서서 마스크를 사서 보내 주시는 정성뿐만  아니라 얼굴이 작은 우리 둘째를 위한 시누이의 정성 어린 특별 수제 마스크와 필터까지 한 뭉치 받았다. 한국에서는 소소하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 일 수도 있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귀한 것들임을 우리가 알기에  택배를 보내셨다는 연락을 받으면 한껏 부푼 기대와 함께 목이 빠지게 현관문을 들락날락하며 택배 차를 기다리곤 했다.



          < 시누이의 특별 제작 필터교체용 수제 마스크 >


 택배 상자가 오는 날이면 나는 어릴 적 퇴근 무렵 아빠 손에 들려 있종합 선물 세트가  떠오른다. 어떤 과자가 있을지 기대하며 과자 상자를 뜯고, 고사리 손으로 하나하나 꺼내서 오빠들과 사이좋게 나눠먹던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떠올라  양가 부모님들께서 보내주시는 택배에 딸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 또한 눈을 반짝반짝 거리며 무엇이 들었을지 궁금해하며 기대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매번 부칠 때마다 함께 부쳐주신다며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하시는 어머님께  한사코 괜찮다고 말씀드리다가 이번에는 다이어리 꾸밀 때 쓸 스티커를 사달라고 부탁드렸다. 지난번 시누이도 온갖 마스킹 테이프들과 스티커를 한 아름 보내 준 적도 있고 혹여나 어떤 걸 살지 잘 모르시면 당연히 나에게 또는  시누이에게 물어보시겠지 하는 마음과 취향이 고상한 어머님께서 그저  보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에 나는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아기자기하고 예쁜 스티커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설사  있다 해도 가격에 비해 그 퀄리티가 한국보다는 떨어지기에 하나하나 살 때마다 발품을 팔아야  했다. 나는 어머님께 말씀드린 이후로는 어떤 이쁜 스티커를 보내주실지 그래서 받게 되면 어떻게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을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이 왔다.



두둥~~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스티커들이 왔도다!



 택배박스에는 여전히 어머님 아버님의 정성으로 다양하고 많은 것들이 꽉 차있었지만 난 스티커밖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이들과 하나하나 꺼내면서도 얼마나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스티커를 얼마만큼 보내셨을지에만 집중되어 다른 물품들은 미안하게도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80세 까우신 나의 시어머님은 정말 다양하게도 스티커(?)를 보내주셨다. 아마도 다양하게 보내주시고 싶은 어머님의  마음이었을 테다. 어머님은  커버 있는 큰 찾아보기표,  커버 없는 큰 견출지,  세로로 긴 견출지, 커버 있는 작은 견출지, 커버 없는 색색깔의 작은 견출지,커버없는 단색 작은 견출지..

견출지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니 정말 견출지가 이렇게 다양했는지 나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각양각색의 견출지를 보니 머리가 멍하고~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랄까?

그렇게 다양한 견출지들은 내가 기대했던 스티커를 대신해서 소중하게 포장되어 비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먼 이곳 타국의 시애틀까지 온 것이다.



 소풍 가기 전 며칠 전부터 한껏 들떠있는 어린아이마냥 어떤 스티커가 올지 상상하고 기대하고 미리 기뻐하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내겐 그 얼마나 청천벽력이던지..

아..... 얼마나 허망하던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 모르시면 물어라도 보시지..'

' 문구점에 이쁜 스티커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저것밖엔 안보이셨을까?'



 아기자기한 스티커를 한 아름 받을 기대치가 너무나도 컸던 나는 어린아이 같은 사고만 하면서 어머님의 그 정성 어린 많은 선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실망감과 허탈감에 쌓여 어어니를 원망 아닌 원망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부탁도 드리지 않았던  다이어리까지 센스 있게 말없이 함께 보내주셨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몇 주간의 한껏 부푼 나의 기대와 환상은 그렇게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리고 그 많고 다양한 견출지들은 그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한동안 나의 눈총을  맞으며 서랍 한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할 뿐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한동안 서랍 속에 자리한 견출지들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매번 빈티지 다꾸(빈티지 다이어리 꾸미기)를 다이어리에만 꾸미다가 색다른 시도를 하기로 했던 어느 날, 어떤 방법으로 시도를 해볼까 하며 내가 가진 재료들을 살펴보며 아이디어를 내고 있을 때 문득 내게 다양하고도 많은 견출지들이 떠올랐고 나는 그 견출지들에게 구박의 눈총을 벗어내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로 했다.



나의 첫 스꾸(스티커 꾸미기)는 그렇게 탄생된 것이었다.






 스꾸(스티커 꾸미기)를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80세 가까우신  시어머니가 며느리 주신다며 손수 문구점 가서 사다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었는데...


 어머님께 디테일하게 설명도 드리지 않고서  그저 아시겠거니 하며  나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기대만 가득하고 있었던 철부지 같은 내가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며느리의 부탁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문구점에서 직접 사다주시는  시어머님이 또 얼마나 계신다고....

당신 아들보다도 어리다면서  막내딸처럼 항상 잘 챙겨 주시던 어머니셨는데...

 타국으로 보내신다고 우리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사서 포장해서 해외로 부쳐주셨건만 배은망덕하고 배부른 소리를 하는 부족한 며느리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매번 다이어리에 꾸몄던 내게는 견출지에 꾸미는 그것 또한 도전이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좁은 공간에 표현해야 하는 그것이 처음엔 좀 어려웠지만 하나둘씩 해나가다 보니  좀 감이 잡혔다.

이것들은 내가 다이어리를 꾸밀 때나 편지를 쓸 때 이용할 수 있는 나만의 스티커로 변신했다. 아직도 스꾸가 서툴고 부족하지만 나는 어머님 덕분에  원 없이  할 재료가 있으니 어머님의 그 정성을 생각하며 다시 열심히 스꾸를 해야겠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우리 즐겁게 지내요~~

어머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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